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우려되는 연준발 가계위기


지금은 열기가 다소 꺾였지만 쑹훙빙의 '화폐전쟁'이라는 책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내용 자체도 그리 새롭지 않은 국제 금융자본의 음모론에다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버무린 '팩션(faction)'이다. 제1·2차 세계대전, 1929년 대공황 등 현대사의 대다수 사건이 금융자본의 음모라고 고발하지만 논리적 근거는 빈약하다. 구체적인 사료 없이 상상력에 상당수 의존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사회는 이런 소설 같은 음모론에 열광했을까. 당시는 인터넷 논객인 '미네르바' 등 재야 경제학자들의 전성시대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리먼브러더스 파산이라는 '남의 동네' 일 때문에 주식·부동산 등 피땀 흘려 쌓아온 자산가격이 급락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반면 1997년 외환위기 전에도 "위기는 없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정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당시 음모론 횡행은 정부 신뢰 위기이기도 했다. 스펙트럼은 다양하지만 국제자본 음모론의 골격은 간단하다. 양털이 자라는 대로 뒀다가 어느 날 한꺼번에 털을 깎아가는 것처럼 통화 팽창과 긴축을 되풀이해 신흥국의 부와 중산층의 자산을 약탈해 간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 금융위기 전개 과정을 보면 이 같은 주장에 수긍할 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어쨌거나 쑹훙빙의 표현에 따르자면 국제금융 자본의 '양털 깎기' 전략이 조만간 가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환율 방어 위해선 금리인상 불가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17일 끝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상당 기간 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며 기준금리 조기 인상 우려를 진화했다. 하지만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가 내년 1·4분기에서 내년 7월로 다소 미뤄졌다고 해서 신흥국 금융시장에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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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연준이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면 외국인 자금이 탈출하면서 신흥국은 금리상승, 통화가치 하락의 이중고를 겪었고 여지없이 금융위기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 1970년대 중남미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도 연준이 단초를 제공했다. 이미 브라질·필리핀·인도·말레이시아 등 일부 신흥국들은 기준금리 인상, 외국인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 방어막 치기에 한창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외환보유액과 경상수지 적자, 재정건전성, 기업들의 막대한 현금 보유 등을 감안하면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기업들이 줄도산 위기에 빠지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연준 출구전략의 안전지대도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내외 금리 차가 줄고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면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인상 카드를 고민해야 할 처지로 몰릴 것이 뻔하다. 대외 변수에 취약한 우리나라로서는 위기 때 성장률·물가·환율 등 3대 경제 운용 목표 가운데 단 하나의 선택이 강요된다면 환율일 수밖에 없다. 성장률 둔화와 물가 상승이 국가의 부나 가계소득이 줄어드는 차원이라면 환율은 최악의 경우 국가 부도의 문제이다.

특히 기준금리 상승은 가계부채라는 한국 경제의 가장 약한 고리를 강타할 가능성이 높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상승하면 내수위축, 부동산가격 하락 등의 연쇄작용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더구나 상당수 가계의 빚 상환 부담이 늘면서 파산 위기로까지 내몰릴 수도 있다.

기업 파산은 공적자금 투입 등 회생 대책이 간단하기라도 하다. 가계 파산은 개인을 직접 공격한다는 점에서 사회 불안을 심화시키고 정부 지원도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 이미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국제기관들은 1,000조원을 넘어선 한국의 가계부채가 거시 안전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가계빚 부담 증가 파산위기 몰릴 수도

하지만 최경환 경제팀은 국내외의 경고에 뒷짐을 지고 있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빚을 내 주택을 구입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권하고 한은에는 금리인하 압박 공세를 펼치고 있다. 최근 최 부총리의 '초이노믹스'에 대한 시장의 환호가 2~3년 뒤 서민들의 비명소리로 바뀌지 않을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경제 위기는 실물 위기보다는 신뢰 위기로 발생한다. '가계부채가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낮다'고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 대책을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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