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데스크칼럼] 물가 3%·순채권국의 신기루

柳晳基정경부장정부가 발표한 99년도 경제정책 방향 속에는 눈이 뻔쩍 뜨이는 내용이 2건 들어있다. 올해말 우리나라는 대외자산이 해외부채보다 더 많아져 「순(純)채권국」이 되며, 연간 「3%수준」의 물가안정이 예상된다는 내용이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외국 빚을 갚을 길 없어 IMF 구제금융 신세로 전락한 게 지난 97년말이다. 지난해 국민들은 기업 파산, 은행 퇴출, 실업자 양산, 임금 삭감 등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환율이 다락같이 올라 생필품 값이 줄줄이 인상되기도 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 순채권국 전환에 3% 물가를 달성한다니 이 무슨 도깨비장난 같은 얘기인가. 연말께면 IMF 구제금융 신세도 청산한다는 얘기인가. 정부 발표를 자세히 알아보자. 지난해말 우리나라의 순외채 규모는 170억달러선으로 전망되고 올해 200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돼 순채권국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외국인투자가 몰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를 모두 갚고도 연말 외환보유액은 550억달러 이상 쌓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물가는 농산물, 공공요금 등 불안요인이 있으나 임금, 환율, 국제원자재 가격의 하향안정 덕분에 연간 「3%수준」으로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하고 대형컴퓨터로 정밀 도상연습을 거듭한 끝에 나온 결론이니 꽤 근거있는 지표일 터다. 하지만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순채권국, 3% 물가안정은 워낙 거창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이 두가지 목표는 지난 93년 김영삼정부가 소위 「신경제 5개년계획」을 통해 제시했다가 물거품이 된 바 있다. 신경제 계획에 따르면 95년부터 3%대의 물가안정을 이룩해 98년에는 2.9%의 선진국 물가구조를 정착시킨다는 것. 또 국민소득이 1만4,076달러에 이르는 98년에는 60억달러의 대외순자산을 보유, 순채권국이 된다는 그림이었다. 공연히 마음만 설레게 하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목표들이었다. 문민정부 5년동안 정부는 물가가 흔들릴 때마다 세무조사니 위생검사니 하며 마구 눌러댔지만 소비자물가가 4.5% 밑으로 내려간 적은 한번도 없다. 경상수지는 94년 45억, 95년 89억, 96년 237억달러로 3년연속 곱배기 적자증가 행진을 벌인 끝에 외환위기에 휘말려 좌초하고 말았다. YS정권은 OECD 가입의 휘황찬란함을 맛보기 위해 능력을 웃도는 금융개방 계획을 약속했고 소득 1만달러를 만들기 위해 원화 고평가의 환율정책으로 텅빈 곳간에 화약만 채우는 무모함을 보였다. 그 결과가 40여년간 피땀흘려 모은 재산을 절반이상 날려버린 「IMF 대폭발」임을 이제 누구나 잘 안다. 우리나라도 통계지수상 3%이하의 물가안정을 이룩한 적은 있다. 지난 84~86년 3년간이 그렇다. 물가 하나만은 확실히 잡겠다는 대통령의 추상같은 의지를 바탕으로 대대적인 재정·통화 긴축이 시행됐고 때마침 불어닥친 3저호황에 어울려 2%대의 저물가를 실현했었다. 그러나 마구잡이 물가잡기가 임금인상 억제와 간접자본 투자 미흡으로 직결되며 80년대 중반이후 우리 경제의 고질인 「고비용 저효율」구조를 고착시킨 단초가 됐다. 「고지 탈환」식 지표달성 행정이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잘 말해주는 또다른 사례다. 정부가 새해들어 제시한 「순채권국 전환」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IMF로부터 큰 돈을 빌어왔고 기업들은 주식을 외국에 팔아넘겨 달러를 들여왔다. 반면 국제신인도 하락으로 기업들은 신규 해외차입은 어렵고 만기가 돌아온 빚을 갚아내기도 어렵다. 결국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축소지향적」 순채권국이 된 셈이니 이게 과연 즐거운 일인가. 지난해 진행된 구조조정 작업은 「기업의 빚」을 회계상 「정부의 빚」으로 돌려놓은 거나 다름없다. 국민혈세를 담보로 국공채를 발행해 일단 빚을 메웠지만 두고두고 온 국민이 갚아야 할 몫이 된 현실이다. 3%물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당국자들도 솔직히 「희망사항」이라 실토한다. 개정 한은법상 연간 물가억제목표를 제시해야 하는 한국은행은 웬일인지 보름가까이 발표를 미루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억제 목표가 4 1%로 정해져 올해 물가가 5%대에 턱걸이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농산물 작황에 따라 생필품 값 변동이 심한 특성때문에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수입을 늘리고 경상수지 흑자를 줄일 수 밖에 없다. 또 경기침체로 잠복된 인플레 기대심리가 언제 고개를 들지 짐작하기 어려운 실정이기도 하다. 개방경제 시대에는 정부도 경제예측기관의 하나일 뿐이다. 긴급사태를 맞아 시장 흐름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과 힘을 가진 점만 민간연구소와 다르다. 그러나 지난 97년 하반기 외환위기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국제시장의 소용돌이에 한번 휩쓸리면 강력한 한국정부도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3%물가·순채권국 달성이 자칫 정치구호로 둔갑할 가능성에 대해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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