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산업기반 붕괴까지 불러올지 모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을 놓고 과학기술계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원인과 대책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그 해법 중 하나로 영국왕립연구소(Royal Institution, RI)의 금요강연 혹은 크리스마스강연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금요강연은 전기기술문명의 뿌리가 되는 전자유도법칙을 발견한 마이클 파라데이에 의해 지난 1826년부터 시작됐다.
금요강연은 당시 그림을 보면 연사와 청중이 모두 턱시도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격식을 갖춘 강연이다.
이 강연은 매주 열리며 연사는 과학적 화제를 실험적으로 시연하면서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식으로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왕립연구소 멤버로서 손님을 두명까지 동반할 수 있다. 멤버는 가족회원ㆍ법인회원ㆍ학교회원이 있고 회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됐다.
오늘날 RI의 활동은 매우 다채롭다. 금요강연은 밤 9시부터 시작되며 별도의 질문시간은 없다. 강연 뒤에 열리는 티타임에는 연사도 있지 않다. 또한 매달 한번 개최하는 '토론의 밤'은 오후6시부터 시작되고 강연 후 토론이 계속된다.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무척 세심하다. 학습연령별 눈높이에 맞춰 주제를 삼는다. 예를 들면 10- 11세의 어린이에게는 '화학은 .... 쉽다' '... 원리는 이것을 의미한다' 등. 8- 9세에게는 '전기 만드는 방법', 5-6세는 '지구와 혹성들'이다.
그리고 12-14세를 위해서는 전국 여러 도시에서 '수학마스터 강좌'를 열고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전자 그 운동과 자석' '상대성 이론' '에너지 문제' 등을 놓고 과학자와 어린이들이 자리를 함께 한다.
지금 우리에게 '이공계가 위험하다'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급히 이쪽 저쪽에서 강연회가 급조돼 주최측의 실적채우기에 바쁜 일회성 행사같은 인상도 결코 적지 않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도리어 가치관의 혼돈만 가져온다.
이럴 때일수록 풀뿌리 과학기술 실천이라는 큰 틀 속에서 과학자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권위 있는 강의를 체계적이고 다양화하여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고 자신 있게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질(質) 높은 청소년이 이공계에 지망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해 아쉽다.
/김정덕(한국과학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