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어느 중기인의 호소(사설)

한보비리 수사가 마무리 수순에 접어든 것 같다. 검찰은 앞으로 추가 소환될 정·관계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종결단계에 들어갔음을 시사했다.건국이래 최대의 의혹사건이 수사착수 18일만에 종결되는 초고속 수사인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수사 결과는 국민의 기대와는 사뭇 거리가 멀다. 문민 검찰이고 대통령도 성역없는 수사를 거듭거듭 강조해 온 만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여서 국민의 가슴엔 의혹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어쩌면 이렇게도 수서사건의 수사결과와 꼭 닮았을까. 지금까지 검찰에 구속된 사람은 정치인 4명, 장관 1명, 은행장 2명, 한보관계자 2명 등 모두 9명이다. 벌써부터 예견했듯이 수서사건 때보다 구속자는 2명이 늘었지만 면면을 보면 그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의혹의 핵심과 배후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것도 닮았다. 한보비리의 핵심은 5조7천억원의 편법대출 경위와 외압 그리고 그 외압의 실체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러나 구속자들의 위치나 실력으로 보아 천문학적인 특혜대출의 외압 실체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검찰수사대로라면 두 은행장이 한보에 내준 돈은 6천7백91억원에 불과한데 나머지 4조원이 넘는 돈은 정상적인 대출이거나 외압에 의한 것이 된다. 검찰이 외압으로 구속한 인물은 홍인길 황병태 정재철 의원 등 3명, 이들이 엄청난 특혜대출의 핵심이라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홍의원은 「깃털」론을 펴며 스스로 외압의 실체가 아님을 주장했다. 많은 깃털을 달고 있는 몸체가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게다가 외압과 대출이 집중된 시기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이들이 대출압력을 행사한 것은 95년말 이후이고 뇌물을 받은 것도 96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96년 한보에 대출해준 돈은 9천3백억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대출은 외압없이 정상적인 대출이었다는 말인데 그것이 가능했을까. 은행대출 관행으로 보아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홍의원이 청와대 총무수석 재직때인 94∼95년에는 대출관련 압력행사 흔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 또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청와대 수석때 압력을 행사했다면 대통령과 직결되기 때문에 압력시기를 짜깁기 했다는 의혹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관계에서는 대출비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내무장관 1명이 구속되었다. 수사의 방향을 정치권에 맞춰 외압의 핵심을 흐리면서 관계의 한사람을 끼워넣는 구색맞추기 인상이 짙게 풍긴다. 특혜대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야당 의원에게는 무거운 죄목을, 외압의 실체라는 여당의원에게는 가벼운 죄목을 적용한 것도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올만 하다. 앞으로 수사가 더 진행될 것으로 믿지만 외압의 핵심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불신만 키우게 된다. 수서사건이 좋은 본보기 일 것이다. 수서사건에서처럼 축소수사는 의혹의 꼬리가 길어지고 결국은 정권이 바뀌자 진실이 밝혀졌다. 검찰과 정권에 불명예의 오점으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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