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베를린을 다녀와서


지난주 한독 포럼 참석차 베를린에 다녀왔다. 유럽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독일 사정은 괜찮아 보였다. 경제성장률이 3%대이고 청년실업률도 낮은 편이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 27개국 중 23개국에서 정부수반이 바뀌었지만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정부는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과 독일 공히 거시경제가 좋지만 내부는 전혀 다르다. 대결구도가 증폭되고 있는 한국에 비해 독일은 내부갈등을 잘 조정하면서 유럽 속의 패권을 확립해가고 있다. 독일 국민은 정책을 보고 정당을 선택한다. 정당은 전문가를 영입하고 정책개발에 애쓴다. 비례대표가 하원의원의 절반이나 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정당들은 정책으로 경쟁하자고 외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필자는 정치를 시작할 때 정책에 전념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맥이 빠진다. 대권 후보가 지나가듯 한 마디 하면 며칠에 걸쳐 기사가 나가지만 정치인이 좋은 정책을 제안해도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특히 정책을 길게 설명할수록 들어줄 기자는 줄어든다. 국민이 이해하겠냐는 것이다. 금방 이해되는 것만 국민의 관심거리가 된다. 짧게 주고받는 소셜네트워크(SNS)가 활성화될수록 그런 현상은 심해진다. 한나라당에서 내놓은 만0세 무상보육, 만5세 무상교육만 해도 그렇다. 진보인사조차 혁명적이라고 놀라지만 정책에는 감동이 없다. 이러다 보니 정치판은 서울 음식처럼 당장 매운 맛이 손님을 끈다. 한국에서 평소 정책을 개발하겠다는 국회의원은 멸종 단계에 와있다. 해봤자 기사가 나지 않으면 "당신 뭐 했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어디에 이름이라도 언급되려면 도가니 영화 때처럼 뒷북 치면서 떠드는 것이 낫다. 정치인들은 정책은 멀리하고 인간 관계를 쌓느라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책실종 현상은 언론에 책임을 돌릴 문제는 아니다. 정당의 정책기능은 국민이 알면 놀랄 정도로 허술하다. 한국 정당에는 일상적인 민생정책을 다루는 기구 자체가 없다. 정부는 야당이 문제 삼을 만한 법안이나 정책만 당정협의에 올린다.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민생을 무시해온 것에 대한 징벌이다. 독일처럼 정당이 조직적으로 정책 활동을 해왔더라면 정책 없이 감성에 호소하는 반짝 정치신인은 변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당의 살길은 길게 보면 정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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