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화제의 책] 인물로 읽는 한국풍류사

[화제의 책] 인물로 읽는 한국풍류사 황원갑지음, "그대들 아직도 허명을 쫓을텐가"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달린다. 또 헛된 명예나 권력을 위해 몸을 더럽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이 모두가 행복을 위한 맹목적 줄달음질이다. 물론 돈이 많고, 높은 지위에 오르면 행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돈이나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우리는 수많은 부자들이 한순간에 불행의 나락에 빠져드는 일을 종종 본다. 권력은 또 얼마나 무상한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영원한 권력이란 없다. 돈도 권력도 그 위력을 상실하고 나면 그저 허무할 뿐이다. 게다가 인생이란 것 자체가 유한한 것일진대, 말해 무엇하랴. 소설가 황원갑이 쓴 '인물로 읽는 한국풍류사'(청아출판사 펴냄)는 온갖 것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을 버리고 진정한 행복을 누린 선조들의 삶과 지혜를 담고 있다. 삼국시대 최대의 로맨스 백제 무왕과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의 사랑을 보자.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려두고 맛둥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간다." 무왕은 이처럼 험악(?)한 노래를 시중에 퍼뜨려 신라 최고의 미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용기 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수 있다고 했던가. 천년 전의 로맨스에 '솔깃'해진다. 조선왕조 초기 희대의 천재 김시습의 삶은 또 어떤가. 김시습의 문재는 어려서부터 파다했다. 한마디로 당상관 정도의 벼슬은 떼어논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나 할까. 그런 그가 승려가 됐다. 부귀공명이 허망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때는 수양대군이 피비린내나는 정변을 일으켰을 즈음. 시습은 불의와 폭력이 정의와 순리를 억누르고 사악한 권세가 정당화되는 난세에 글공부 따위가 무슨 소용 있겠는가 하는 깨달음에 도달했던 것 같다. 우리 현대사에 무수했던 폭력적인 정변, 그리고 그 패악에 순응하며 허명을 행복인양 느끼며 살아온 수많은 지식인들에게는 가슴 뜨끔한 대목이다.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대나무 지팡이에 의탁해 한평생 삼천리 곳곳을 떠돌았던 천재시인 김삿갓의 삶은 '풍류'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김삿갓이 이처럼 부평초 같은 한삶을 살다 간 까닭은 '연좌제' 때문이다. 조부가 홍경래의 난에 얽혀 김삿갓의 벼슬길은 완전히 막혀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제도의 억압은 오히려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소나무와 잣나무 바위를 휘휘도니 물에 물 산에 산 곳곳이 절경이로세" 산천의 절경을 즐기면서, "산골 처녀 다 커 어른같은데 분홍빛 짧은 치마 헐렁하네 맨살 허벅지 드러나니 길손이 부끄러워 솔울타리 깊은 집엔 꽃향기만 물씬"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도 나누면서, 희대의 풍류객 김삿갓은 바람처럼 살다가 구름처럼 물결처럼 흘러갔다. 이 책은 이밖에 ▦평강공주는 왜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야만 했을까 ▦원효는 어떻게 파계한 뒤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을까 ▦최치원은 정말로 충남 홍성에서 숨어살다가 한 삶을 마쳤는가 ▦양녕대군이 왕위를 버린 참된 이유는 무엇일까 ▦정철은 어떻게 당쟁에 부침하면서도 주옥같은 노래를 남길 수 있었던가 ▦임제는 왜 죽을 때 자식들에게 울지 말라고 했을까 ▦곽재우는 무슨 까닭에 벼슬을 버리고 신선술을 닦았을까 ▦허균은 문인이었나 정치가였나 아니면 혁명가였나 ▦김만중은 어찌하여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죽어야 했을까 ▦정약용은 왜 다산초당에서 18년간이나 귀양살이를 했을까 ▦신재효는 왜 서민의 소리 판소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을까 등의 내용을 담고있다. 이 책은 또 하나의 미덕이 있다. 선조 풍류객들에 얽힌 역사적 자료들과 각종 일화, 그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유적지를 지도까지 곁들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는 점. 역사서이면서 동시에 답사여행안내서 노릇도 겸하고 있는 셈이다. 30여년간 소설가로, 또 역사연구가로서 전국 각지를 샅샅이 누비고 다닌 '현세의 풍류객' 황원갑씨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이 시대는 난세로 접어들었다"면서, "이젠 세상잡사와 공리공명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고 운치있게 살아가자"고 말한다. 문성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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