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합법-배임 기로에 선 재계] 걸면 걸리는 배임죄 기업가정신 해친다

경영상 판단까지 적용 "기업활동 위축" 49%<br>'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검찰·법원 자의적 해석… 명확한 기준 정립해야


"마치 담장 위를 걷는 심정입니다."

국내 한 대기업 고위임원의 하소연에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배임죄 앞에서 오늘도 합법과 불법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업인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기준과 원칙조차 불명확한 배임죄의 덫에 걸리면 어떤 기업인이라도 범죄자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임원은 "외국에서는 거의 존재조차 하지 않는 배임죄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활개 치며 기업과 기업인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근 학계와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인의 경영 판단행위에 대해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하는 현행법을 하루빨리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적법한 절차를 거친 경영상 판단까지 처벌하는 것은 사법권 남용이자 기업의 정상적 경영활동을 위축시켜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형법상 배임죄가 업무상 배임에 의한 것인지, 경영상 판단에 의한 것인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크다는 점에 대해 국내 법학자뿐 아니라 독일과 일본의 학자들도 인식이 일치하고 있다"며 "특히 경영판단에 대한 배임죄 적용은 자칫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국내 기업 29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절반에 달하는 49%가 '배임 처벌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킨다'고 답했다. 또 기업 10곳 중 1곳은 배임죄 처벌을 피하려다 의사결정 지연이나 투자위축 등과 같은 경영차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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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임죄는 범죄 구성요건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없어 법의 잣대가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형법에서는 배임죄를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본인 또는 제3자가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해 손해를 가한 경우'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에는 고의성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검찰이나 법원의 자의적 해석이 충분히 개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업인에게 적용되는 배임죄의 무죄율이 전체 형사범죄에 비해 평균 5배나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배임죄 적용기준을 더욱 명확하게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배임죄를 도입한 미국독일 역시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합리적 경영판단이라면 회사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경영진에게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 등 법리 적용에 있어서는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강동욱 동국대 교수는 "기업인의 경영실패에 대한 형사책임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기업가정신 훼손과 소극적인 기업 경영, 투자억제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정당한 경영행위에 대해서는 배임죄 적용을 배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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