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북한산 의상능선

2003/3/29(토) 나 홀로 산상매표소(9:40) &#8211; 용암사입구 (10:00) &#8211; 의상봉 (10:50) &#8211; 용출봉 (11:15) &#8211; 용혈봉 (11:30) &#8211; 증취봉 (11:40-50) &#8211; 나월봉 (12:30) &#8211;나한봉 (12:50) &#8211; 문수봉 (1:35) &#8211; 대성문 (2:00) &#8211; 보국문 (2:25) &#8211; 칼바위능선 입구 (2:32) &#8211; 정능 갈림길 (3:20) &#8211; 옹달샘 (3:35) &#8211; 청수장 버스 정류장 (4:20) 버스속에서 만난 할머니 지하철을 한시간 가량 타고 구파발에 내리니 9시20분. 버스 정류장에는 156번 산성입구행을 타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정말 봄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저렇게 사람이 많으면 산을 어떻게 올라가나 하며 가슴이 덜컥 했다. 김밥 한 줄을 사 배낭에 넣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34번이 오니까 줄의 꼬리는 이쪽으로 붙는다. 나는 156번만 가는 줄 알았었다. 버스에 올라 앉아있으니 서리하나 없는 상고머리, 곱디고운 얼굴의 정정하신 할머니 한 분이 입구 첫 자리를 잡으신다. 버스는 거의 꽉 찼다. 한 등산객이 너댓 살 된 아들과 올라온다. ``뒤에 들어가야 자리도 없으니 여기 앉아라``하시며 재빨리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서신다. 나는 운전석 바로 뒤 창가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서슴없이 노인네가 꼬마한테 양보하시나!`` 자괴감에 또 한번 가슴이 덜컹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은 30대초나 중반의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끌어 자신의 무릎위에 앉힌다. ``괜찮아?`` ``걱정 마세요.`` 한마디씩 교환하고 쾌활하신 이 할머니는 꼬마에게 ``북한산에 가니?``라고 물으니 꼬마는 또렷하게 ``예!”라고 대답한다. ``그 녀석 대답도 똑똑하게 잘 하네.`` 화창한 토요일 아침 너무나 보기좋은 버스안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다 이 할머니처럼 조금씩 만 양보하면 세상은 더 살맛 날텐데... 10분도 채 안되어 산성입구에 이른다. 3월1일 처음 문수봉아래서부터 의상봉능선을 타보고 왜 이산이 설악산 못지않다고 말하는 가를 처음 느낀 후 거꾸로 의상봉에서 문수봉쪽으로 타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날이 빨리 온 것이다. 원효와 의상 아름들이 프라타나스, 미루나무, 상수리나무가 입구 길가와 빈터에 많이 서 있어 다른 등산로 입구와 달리 북한산성 정문이 있는 등산로 입구로서의 품위를 세워 주고 있었다. 조그만 상록수 노간주나무는 양념이었다. 남동쪽으로 왼쪽은 원효봉이 오른쪽은 의상봉이 앞을 막으며 떡 버티고 서 있다. 사이로 백운대가 뾰족하게 보인이다. 대남문을 양쪽에서 굽어 지키고 있는 보현봉과 문수봉보다 200미터 이상 낮은데도 입구가 낮은 평야지대라 그렇게 나를 제압해 버린다. 처음 와 본 사람이라면 첩첩 산중같아 저 안에 절이나 행궁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누군지 모르지만 의상봉과 의상 능선, 원효봉과 원효능선의 이름을 참 잘도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은 신라시대 쌍벽을 이루는 불교의 큰 스님으로 꽤 많은 절들이 뿌리를 그 대사 둘에게 두고 있을 정도다. 원효는 모든 중생은 성불할 수 있다는 법성종(해동종)의 창시자. 의상은 화엄종으로 석가가 도를 이룬 뒤 깨달은 대로 설법했다는 경문인 화엄경을 모태로 하고 있다. 이 경전은 법계 (法界) 평등의 진리를 깨우친 석가의 만행 (萬行), 만덕 (萬德)을 칭송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보다 두 스님이 불교를 공부 하러 당나라에 가던 중의 에피소드가 흥미롭다. 다 아는 얘기지만 원효는 밤에 바가지의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이었다는 것. 원효는 모든 게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물론 의상은 당에 가서 화엄경에 푹 빠져 가지고 돌아와 부석사를 창건했다. 둘은 역시 일찍 이 삼각산에도 들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승복을 벗은 원효가 요석 공주와의 로맨스로 설총을 나았던 것이 우리의 흥미를 꽤 자극하는 대목이다. (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 (모든 것에 거리낌 없는 사람이라야 한길로 생사를 벗어나리라) 원효가 파계 후 스스로를 낮추면서 부르고 다닌 無碍(무애)란 노래 속에서 또 다른 그의 불계가 잉태되었으리라. 경전상의 문수, 보현보살이 대남문을 지키는데 반해 이 두 생존했던 대사는 북서쪽 산성 정문을 지키게 돼 참 역할 분담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들 둘의 특성을 봐도, 원효봉은 둥그스러운 바위 하나로 되어 후덕한게 원효의 선(禪)을 통한 깊고 넓은 맛이 있어보이고 의상봉은 잘록 들어간 허리에 긴 스커트를 입은 날렵한 신여성모습으로 의상처럼 지성미가 우세해보인다는 생각이다. 의상봉 암벽을 쇠밧줄 잡고 그런데 다 어디로 갔는지 그렇게 많아 보이던 사람들이 이곳 입구에서는 몇 알갱이 안 보인다. 오히려 사람이 너무 없어 북적대는 게 정상으로 여기던 서울 생활로 보면 허하기 짝이 없다. 하여튼 지난번에 온 길을 역순으로 가느라고 용암사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니 그나마도 아예 등산객이 없다. 용암사에 이르기 전에 등산로 표시가 있는 걸 보면 혹시 절로 직행해 헛걸음치는 것을 도와 줄 요량이리라. 10시 정각. 2주전 만해도 삼각산 북서사면은 눈이 꽤 쌓여 있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송보송하여 흙에서 봄을 느낄 수 있다. 무심코 지나치려고 하니 돌들도 자기들 한테서는 봄 내음을 맡지 못하느냐고 투정부리는 것 같다. 사실 그들도 한층 부드러워 보이는게 봄을 알아차리고 있다는 뜻일 게다. 이 의상봉의 바위가 드러나면서 먼저 오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고 20여 분 오르니 첫번째 쇠밧줄이 나온다. 눈이 없으니 한결 낫다. 회사 단체로 온 일행 중 아가씨들이 힘들어하고 무서워 한다. 2-3년 전 나의 모습을 보는 듯 싶다. 이제는 나도 장갑을 두개 가지고 다닐 정도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남편과 같이 온 젊은 부인이 쇠밭줄을 탈 것을 생각하더니 장갑 타령이다. 새것은 아니지만 실장갑을 건네 주었다. 버릴 수도 있는 것인데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세탁해 가지고 다녔던 터다. 시야가 기하 급수적으로 넓어진다. 북서쪽으로 노고산이 보이고 구파발에서 의정부 가는 길이 훤히 들어온다. 날씨는 좋아도 멀리는 좀 부연하다. 힘을 내 쇠밧줄을 두어 곳에서 더 잡으니 바위로 된 의상봉 정상. 10:40. 단체로 온 한 팀의 찍사가 셔터를 눌러주느라 바쁘다. 잃었던 디카를 다시 찾아 가지고 왔기에 나도 한 컷 부탁했다. 그렇게 원효봉이 웅장하더니 비슷한 높이에서 보니 입구에서 본 맛이 반감된다. 바로 앞 헬기장이 있고 의상봉 봉우리 표지목이 서있는 곳에 오니 사람들이 꽤 북적댄다. 10:50.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왼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국녕사에서는 목탁소리가 더욱 가까이 들려오고 남쪽으로 불쑥 솟은 용출봉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가사당암문을 옆으로 지나면서(11:00) 팀으로 온 젊은이들은 한꺼번에 국녕사쪽으로 내려가 용출봉 가는 길은 또 헐렁하다. 무심코 가는데 오른쪽 옆 머리위로 여근처럼 보이는 바위가 하나 보인다. 내 의도대로 나올지 모르지만 테스트 겸 앵글을 바꿔 두어 컷 눌러봤다. 그러면서 용출봉에 오른 시각이 11:15. 이 봉은 남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철사다리가 놓여 있으니 암괴가 좀 험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달래와 소나무가 있는 평탄한 산보길과 가파른 길을 가다 용혈봉을 지나 (11:28) 증취봉에 넓직한 바위에 앉았다. (11:40) 12시 반으로 알고 김밥을 꺼내었다. 보국문과 대남문으로 가는 깊게 파인 골짜기가 북서에서 남동쪽으로 나있고, 노적봉아래 노적사와 중흥사지 위로 태고사도 보인다. 한 등산객 말마따나 위치가 좋다 싶으면 절이 다 점령하고 있다. 혼자 다니니 가고 싶으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머무는 등 자유스러워 좋다. 나름대로 다 장단점이 있으니 장점만 최대한 살리는 게 산행뿐 아니라 평소 힘든 삶을 헤쳐가는 지혜일 것이다. 참나무와 소나무 능선따라 사방이 보여 북한산을 전체의 윤곽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능선이 바로 의상능선이라는 것을 지난번 처음 알았다. 아직 낙엽 활엽수는 겨울이라 푸른 소나무군과 구별이 확연하다. 유심히 쳐다보니 이런 특징이 발견된다. 골짜기나 양지바른 경사면은 참나무, 단풍나무등 활엽수들이 차지하고 있고 소나무는 능선쪽이나 바위가 많은 암반 가까이 척박한 곳에 주로 서 있다. 등산로 입구를 들어서면 길가에 소나무와 참나무의 싸움 이야기가 있다. 햇빛을 서로 많이 받으러 키를 키우며 서로 싸운단다. 그런데 낙엽수인 참나무가 잎이 넓어 조금만 위로 솟으면 소나무는 지고 오그라든단다. 그대로라면 참나무에게 좋은 자리를 다 뺏기고 바위에 기대고 있는 모습이라니 처량할 뿐이다. 오죽하면 바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 깊은 산 곳곳에서 인간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 않는가 말이다. 끈질긴 생명력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기구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최근 한 기상학자의 발표에 의하면 2060년에 가면 봄과 가을이 없어진다니 결국 아열대화 되어 여름이 길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면 활엽수가 더욱 무성할 것이고 자연히 소나무의 성장을 막아 결국 한반도에서 멸종된다는 가정도 상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후손은 소나무를 옛 화가들이 남겨놓은 박제된 그림에서나 보고 상상해 보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도 해봤다.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딱새도 쌍쌍이 봄을 이 능선의 두 번째 암문 부왕동 암문 아래 넓은 자리에는 한 팀이 자리를 잡고 점심을 풀어제끼고 오는 봄을 맞고 있다. 길가에 새 소리가 난다. 조용히 소리나는 곳으로 눈길을 옮기니 2쌍의 딱새가 등산객이 갖다 놓은 모이를 먹으며 장난치며 놀고 있다. 디카의 줌을 할 줄을 몰라 너무 멀리 잡힌다. 지난번에 우회했던 나월봉은 앞사람 따라 올라가다 한 발짝 더 올라탔다.12:30.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제일 균형잡힌 삼각산을 잘 포착하기 위해서였다.. 무서워 떨며 올라가니 젊은 등산객이 떠나지 않고 기다린다. 혹시 내려올 때 겁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깍아지른 정상은 올라갈 생각은 못하겠다. 나한봉에는 점심들 먹느라 바쁘다. (12:50) 나도 남쪽 폐허가 된 산성터에 자리를 잡았다. 삼각점(715m)과 비봉능선을 바라보면서 어디로 하산할까 고민하면서… 어슬렁거리는 白蛇 모양의 산성 삼각점을 지나 (1:17) 세번 째 암문 청수동 암문을 지난다. 어느 등산객이 왜 북한산에는 숫문(?)은 없고 암문(?)만 있냐고 한다. 대처나 들어보니 그렇기도 하다. 어차피 숙종때 끝난 일이니 탓하기보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숫문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 같다. 북한산을 사랑하는 등산객들이 만들어 봄직한데 만들어봐야 어떻게 생길지,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수봉을 출발 1:35. 문수봉 북사면에는 아직도 잔설이 희끗희끗하고 산성따라 길에 얼음도 아직 남아 있다. 대남문에 오니 자리 깔고 오손도손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성벽아래 자리에 누워 일광욕 하는 사람, 보물 찾기 하는 회사 직원들 등 사람들이 좀 북적댄다. 산성을 따라 오르니 출입 통제된 보현봉이 제일 가까운 봉우리아닌 불문봉이다. 북서쪽으로 하얀 쑥돌로 복원한 이 산성 성곽이 마치 꼬불꼬불 봄을 즐기는 백사(白蛇)같다. 언젠가는 성가퀴가 다 허물어진 의상능선의 성곽과 원효 능선이 복원되면 양쪽으로 하얀 뱀들이 꼬리를 물고 백운대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삼각봉이 우뚝 선 모습 대성문을 오면서 우뚝 솟은 우람한 삼각산을 보니 정말 어느누구도 감히 도전해 보겠다는 자가 없을 것 같다. 의상능선을 타고나서 보니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노적봉을 앞세운 모습이 정말 듬직하다. 그런데 왜 산성 주능선은 인위적으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을까.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도 대가 뚜렷해 필요 없어서인가. 북한산 안내판에 무학대사가 이성계와 함께 만경대에서 이 주능선을 타고 오면서 천도 할 한수 이북의 지세를 살폈다고 한다. 그래서 만경대를 국망봉이라고도 한단다. 이런 얘기가 있을진데 무학능선이나 이성계능선이면 어떨까. 골을 제일 깊고 멀리 만든 곳을 성으로 둘러 행궁등 여러 시설이 있었다니 정말 천혜의 입지 조건이다. 봄의 색깔은 정릉 계곡 하산에서 진달래 관목은 오는 내내 길옆에 보인다. 보국문 밖 오른쪽의 딱총나무는 양지끝이라서 빠른 것 같다. 병아리 알깨고 나오는 것처럼 나뭇잎이 힘겹게 터져 나오는게 보인다. (2;25) 칼바위능선으로 들어서는데 바람이 일기시작하고 해가 구름속으로 들어간다. 작년에 한번 타본 능선이라 낯설지는 않은데 제일 위험스런 곳(꼭대기에 두 바위 사이로 오르는 곳) 에서는 한참을 멈칫거렸다. 6시 집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카데미 하우스행 칼바위매표소행으로 갈라지는 사거리 지점에서 정릉청수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인기척이 전혀 없다. 내려오는데 노란 풀꽃이 보인다. 노랑 제비꽃이다. 처음으로 카메라에 잡은 봄이었다. 남쪽이라 따뜻해 일찍 핀 것 같다. 넓적바위에 가까워지면서 생강나무가 하나씩 나타난다. 생강나무도 몇 컷. ``혹시 오다가 길가에서 산수유 꽃 피어 있는 걸 보았느냐?``고 묻는 것 같다. 구파발에서 버스 창 밖으로 이미 내 눈에 잡혔었다. 사실 산수유는 산에 가면 생강나무가 게으름 안 부리고 꽃을 피웠는가 알려 달라는 눈치였었다. 잎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는 꽃만 피운 요즘 같은 때는 멀리서 보면 구분이 거의 안되고 그저 일찍 노랗게 피어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전령들이겠거니 할 뿐이다. 산에서 피면 생강나무요 길가나 마을에 피는 것은 산수유로 보면 대충 맞았다. 하기야 요즈음은 산에 산수유를 많이 심기 때문에 이 법칙도 깨져 있으니 꽃만 보이는 이른 봄을 생각하면 유심히 관찰해 구분해 두어야 망신당하지 않는다. 진달래는 산행 내내 눈에 띄었다. 물론 꽃은 이 골짜기에서나 조금씩 보일 뿐 능선에는 가지 끝과 겨드랑마다 꽃눈들만 불룩불룩해 곧 봄을 단장할 거란다. 가랭이를 떡 벌리고 서있는 굴참나무도 디카에 담아봤다. 옹달샘가에는 회양목이 하얀 꽃을 내민다. 골짝의 물도 봄을 노래 한다. 청수장정류장에 도착시각이 4:20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로지르는데 도로가의 은행나무는 연두색 꼬마전구가 달린 크리스마스 추리다. 집앞 재천 둑방에는 개나리가 순 황금 덩이를 주저리 주저리 달면서 절정을 향하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는 목련이 뒤질세라 미색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함박눈 같은 꽃을 하늘에 매달고있다. 저마다 봄을 맞고 알리려는 몸짓이 거리와 산 여기저기서 보였다. 저녁은 친구들 정기 모임에서 감자탕에 소주를 곁들이니 기운이 솟는다. 내친김에 맥주한잔 더하고 노래방까지 들러 집에 오니 12시. 하루를 너무 빈틈없이 보냈다. 봄을 보러 4월에도 한층 더 부지런을 떨어 볼 생각이다. 이번 주말부터는 한층 달라질 것 같다. 끝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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