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들이 가차없이 거래선을 멕시코로 옮겨버리더군요.” 지난해 진드기 예방 특허 원단을 사용한 고급 침구류로 미국 시장에 2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던 K사는 환율 변동의 직격탄을 맞은 여러 중소무역업체 가운데 대표적인 회사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1달러당 1,000원 이하의 환율로는 도저히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어 수출단가를 조정해달라고 요청했더니 그대로 끝났다”며 “우리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유사한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곳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데 무슨 수로 경쟁하겠느냐”고 손을 내저었다. ◇활기가 뚝 떨어졌다=수출한국의 개미군단이던 중소 무역업체들의 활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여기저기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으며 스스로 무역전선에서 이탈해 내수에만 매달리는 곳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중국으로 500만달러의 오징어를 수출한 J사는 환율 급락으로 지난해 말부터 적자가 지속되자 올해 들어 수출을 포기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수출은 포기했고 내수로 완전히 방향을 돌렸지만 시장을 뚫지 못해 고전 중”이라며 “월급날자 돌아오는 것이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K사나 J사처럼 수출규모가 연간 100만달러 미만인 소규모 무역업체들이 최근의 불리한 환경 속에서 탈진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1만9,363(전체 수출기업의 78.4%)곳이던 소규모 무역업체가 올해는 1만7,826곳만 활동하고 있다. 새로 등장한 곳을 감안하면 3,000곳 이상이 문을 닫은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ㆍ베트남 공세에 지쳐=환율부담뿐 아니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ㆍ베트남 등 경쟁국의 매서운 시장 잠식도 수출기업들을 지치게 만든다. 지난해 자동차 부품(연료 펌프)을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으로 160만달러 수출했던 C사의 경우 지난해 말 바이어로부터 중국산 저가제품으로 거래선을 변경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는 중국산 제품에 밀려 올해 단돈 1달러도 수출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있다. 수출여건이 악화돼 전체 무역업체 가운데 수출실적이 있는 업체 비율을 나타내는 수출활동참여율은 올 상반기 26.0%로 지난해 31.0%에 비해 5.0%포인트나 급락했다. 수출활동참여율은 지난 2002년 30.7%, 2003년 32.5%, 2004년 33.0%로 상승하다 지난해 하락세로 돌아선 뒤 올 상반기에는 급전직하했다. ◇“거시지표 안정돼야”=무역협회 조사결과 상반기 수출을 중단한 업체 가운데 83.0%는 대내외 여건이 개선될 경우 다시 수출에 나서겠다고 답했다. 재개 의사가 없다고 답한 업체들은 원래 수출비중이 낮았거나 수출가에 비해 내수가격이 안정적인 업종이어서 사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여건만 좋아진다면 다시 수출로 활로를 찾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수출을 중단했던 기업의 51.9%는 수출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환율ㆍ금리 등 거시지표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해외 거래선 확보를 위한 수출마케팅 지원(16.7%), 원자재 가격 안정(14.8%) 등이 뒤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