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영어교육 정책을 다시 본다


지난 5월26일 열린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도입과 영어교육과정 개정에 관한 공개토론회 이후 영어교육에 대한 논쟁이 다시금 일고 있다. 수능영어를 대체할 시험과 학교수업에 말하기와 쓰기를 도입함으로써 실질적인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기르는 것이 정책의 목표이다. 이에 대한 주된 비판은 첫째, 학교에서 말하기와 쓰기를 제대로 가르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국 영어 사교육을 팽창시킬 것이라는 우려에서 나온다. 필자가 지난해 참여한 영어교육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과정에서 수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던 의견이다. 토익 중시하는 풍토 안타까워 하지만 영어 사교육은 지금도 이미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대입 때까지 거의 무시되는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기르기 위해 취업을 앞두고 뒤늦게 학원에 다녀야 하는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라 할 수 없다. 정책이 사교육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은 분명 주목해야 할 부작용이지만 사교육을 하더라도 객관식 답을 골라내는 요령을 가르치는 데서 영어 표현능력을 기르는 보다 쓸모 있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양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학교 영어교육은 영어구사능력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를 마련하고 씨를 뿌리는 과정이다. 비록 기초적인 수준일지라도 말하기와 쓰기는 학교수업과 평가에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현재와 같은 다인수 학급과 교원 양성 시스템에서 학교수업이 영어교육정책의 목표와 개개인의 기대치에 완전히 부응하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이에 가까운 방향으로 학교 현장의 교수 인력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또한 EBS나 인터넷 등을 통해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도 말하기와 쓰기 평가를 연습할 수 있는 교재와 장치를 시급히 보급해야 한다. 둘째, 한국 사회에서 영어능력이 하나의 권력이라는 상황 인식도 영어교육 강화에 대한 거부감을 낳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영어를 출세 수단으로 여기는 외적 학습동기에 따른 영어 사교육 열풍의 뿌리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만큼의 영어상용능력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노동시장에서 영어능력의 경제적 가치는 그리 높지 않을 수 있음에도 희소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과도한 가치가 부여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영어교육의 변화로 영어 의사소통능력 보유의 저변이 넓어진다면 영어능력의 사회적 권력화나 이에 대한 특권적 인식도 점차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비판은 정책에 한정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영어 열풍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자성론이다. 개인의 삶에 필요한 영어 수준과 내용이 상이함에도 다른 소양을 위한 시간과 자원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어학습에 경쟁적으로 몰입하는 상황은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비효율적일 수 있다. 대학생들이 전공을 등한시하고 휴학을 하면서까지 토익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상황이 단적인 예다. 이러한 비효율성이 실제 어느 정도인지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영어교육정책도 영어 의사소통능력의 전반적인 상향을 목표로 해야 하지만, 개별적인 목적과 필요에 맞는 방식으로 합리적인 투자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사소통능력 향상 방안 필요 마지막 네 번째 비판은 약간 다른 논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자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공교육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치는 정책으로 원어민 과외나 어학연수를 특권적으로 수요하던 계층의 우위가 줄어드는 것, 영어 담당교사의 업무와 연수 부담이 늘어나는 것 등이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이 모두를 더 낫게 하고 편하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국민 다수에게 필요한 방향으로 추진하되 반대 의견의 진의를 분석해 이에 적합한 설득과 조정 및 지원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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