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비율빈, 필리핀 그리고 한국인


비율빈(比律賓). 필리핀에 대한 한자 가차(假借)어다. 요즘에는 비율빈을 알아듣는 사람이 흔치 않다. 비율빈을 공식적으로 말한 마지막 사람은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이다. 지난 1997년 4월 서울에 안착한 그는 '중국과 비율빈 정부에 감사드린다'는 문구로 시작되는 메시지를 남겼다. 헌데 많은 사람들이 갸웃거렸다. '비율빈이 도대체 뭐야'


△조선왕조실록에는 필리핀이 '여송국'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순조 9년(1806년) 6월26일자에는 '여송국 표류인을 송환시키라 명하다(命呂宋國漂人 送還本國)'라는 기사가 나온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 필리핀인들의 신원을 청나라에 확인하는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조선은 최선을 다했다. 집과 먹을 것, 언어까지 알려주며 8년 후에 안전하게 돌려보냈다. 필리핀인들이 표류하기 직전에 오키나와와 필리핀, 중국을 거쳐 조선으로 돌아온 상인 문순득의 증언이 주효했다. 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거뒀던 조선과 달리 강퍅했던 인간들도 없지 않았다. 바로 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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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윈 라이샤워 교수의 명저 '일본제국 흥망사'에는 1939년 극동체전에 출전한 필리핀 남자 육상선수와 일본 여성 간의 사랑이 싹텄는데 일제가 이를 탄압하는 대목이 나온다. 열등한 족속과의 만남이라는 이유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을 해방자로 여기고 환영했던 무수한 섬들과 달리 필리핀 제도에서 반일(反日) 게릴라전까지 일어났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거 없는 우월감에 근거한 과잉 민족주의는 또 다른 민족주의의 반발을 사게 마련이다.

△한국인들이 필리핀에서 테러를 당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9년 이후 5년 동안 우리 국민이 필리핀에서 피살된 사건은 무려 40건이나 된다. 졸부 노릇을 한 뒤끝이라 머리가 가렵지만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필리핀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장충체육관과 미국 대사관 건물은 '기술 수준이 뛰어난 필리핀 업체'가 시공을 맡은 건축물이다. 부디 한국인의 심성을 필리핀인들이 제대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그 옛날 여송국 얘기를 들먹여서라도 우리는 오랜 친구라고 설득해야 할 때다. /권홍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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