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안방 안주하다간 한국에 밀린다" 日기업 글로벌화 잰걸음


해외 생산기지 설립·M&A 활발
직원 해외연수·제품 현지화 적극
사내 영어 공용화등 내부 개혁도… 젊은층 갈라파고스화 현상 여전
인식 변화 없이는 위상 회복 먼길
자동차업체 마쓰다는 내년에 스미토모상사와 공동으로 멕시코에 자동차 생산공장을 설립, 본격적인 중남미 시장 개척에 나선다. 마쓰다가 해외공장을 짓는 것은 지난 98년 이래 15년 만, 50% 이상의 지분 참여로 해외기지 설립을 주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에어컨업체인 다이킨공업은 미국 2위의 에어컨 제조사 굿맨 글로벌 인수를 위해 한창 협상 중이다.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다이킨은 인수가 3,000억~3,500억엔을 제시, 굿맨 글로벌의 주주인 투자펀드와 교섭을 벌이고 있다. 인수에 성공하면 다이킨은 전세계 에어컨 시장 1위의 자리를 거머쥐게 된다.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화'를 위한 잰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비용절감을 위한 해외 생산기지 설립은 물론이고, 엔고를 이용한 해외 인수합병(M&A)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 및 공장 설립에 관한 소식이 실릴 정도다. 톰슨로이터에 따르면 올 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일본 기업들이 성사시킨 해외 인수합병(M&A)은 전년동기대비 54% 늘어난 1조5,300억엔 규모. 2001년 이후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글로벌 체질을 갖추기 위한 내부 개혁도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몰 1위 업체인 라쿠텐은 해외사업 비중 확대를 위해 외국인 직원을 대폭 늘리고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내 공지사항은 이미 영어로 게시하고 있으며, 2012년 이후에는 기자회견이나 사내 회의에서도 일본어를 사용하지 않게 된다. 그 동안 비용절감을 위한 '내핍'에 치중해 온 일본 기업들이 공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기폭제가 된 것은 올 하반기 절정으로 치달은 엔고(円高)다. 내수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는 상황에서 엔ㆍ달러환율이 80엔대 초반에서 정착된 엔고 현상이 지속되면서 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과 해외 생산체제 구축에서 생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일본을 위협하는 것은 빠르게 약진하는 한국, 중국 등과 달리 글로벌 시대에서 '나홀로'뒤처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진작에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시장의 추세를 외면한 채 국내 시장에 안주해 온 일본에서는 '갈라파고스' 현상에 대한 우려가 고조돼 왔다. 특히 급신장하는 중국에 2위 경제대국의 자리를 넘겨주고 최근 우리나라가 유럽연합(EU), 미국과 차례로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를 도출하며 착착 시장을 확대해 나가자 일본의 불안감과 자괴감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실시한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국가의 국제경쟁력 조사에서 일본의 순위는 2009년 17위에서 올해 27위로 추락, 중국(18위), 한국(23위)에 모두 뒤져 있는 상태다. 세계시장에서의 위상 추락에 엔고 현상이 맞물리면서 일본 기업들에게 글로벌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의 조건이 됐다. 기업들은 단순한 생산기지 이전에서 벗어나, 고성장하는 신흥시장 개척을 위해 제품의 현지 개발ㆍ연구와 외국인력 채용, 국내 인재의 해외 연수기회 확대, 사내 영어 공용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적인 행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일본 국제협력은행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961개 조사대상 기업들 가운데 작년보다 17%포인트 높은 83%가 향후 해외사업을 '강화'확대'한다고 답했다. '탈(脫)갈라파고스'를 의식한 현지화 전략도 눈에 띈다. 도시바는 최근 동남아와 중동 등 신흥시장을 겨냥한 액정TV를 개발하고 현지 생산을 통한 시장 확대에 나서기로 했으며, 혼다는 인도를 거점으로 신흥국을 타깃으로 하는 이륜차 개발ㆍ판매에 역량을 모을 계획이다. 미쓰비시상사는 직원들의 글로벌화를 위해 새로운 연수제도를 도입, 입사 8년 차가 되기까지 모든 직원이 적어도 한 번은 해외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온라인쇼핑업체인 라쿠텐, 의류업체인 패스트리테일링 등은 아예 사내 공용어를 영어로 전환해 뼛속부터 글로벌체제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적인 행보에도 불구, 한때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던 일본과 일본 기업의 존재감은 국제사회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0월 경제협력협정(EPA) 체결을 계기로 일본이 중국 견제를 위한 대항 시장으로 기대하고 있는 인도시장에서도 일본기업의 존재감은 한국이나 중국 기업에 비해 약하다고 지적했다. 물리적인 해외 진출이 아무리 강화돼도 기업에 종사하는 일본인들의 마인드가 국내에 갇혀 있는 현 상황에서는 아무리 기업의 해외진출이 늘어도 옛 위상을 되찾기 어렵다는 것이 니혼게이자이의 주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최근 일본 산업능률대학의 조사 결과를 인용, 일본 기업들의 일반 직원, 즉 젊은 사무직 직원 가운데 70%가 해외 근무를 원하지 않고 있다며 "일본의 갈라파고스화(Galapagosization)이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국내외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의 장에서는 수 년째 일본 기업인의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으며, 그나마 국제회의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외국인들 틈에서 적극 발언하는 이들은 80세 전후의 고령자들 뿐이다. 일본과 인도의 기업간 제휴를 지원하는 선앤선즈어드바이저의 산지브 신하 대표는 "10년 전까지도 인도에서는 일본의 기술력이 높은 평가를 받고 브랜드 파워도 강했지만 지금은 삼성이나 LG 브랜드가 훨씬 깊숙이 침투해 있다"며 "현지에 뿌리를 내리며 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한국 주재원들과 빨리 일본으로 돌아가고만 싶어하는 일본 주재원들의 모습은 많은 차이를 말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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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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