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칸 주요20개국(G20)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이 이틀째 침묵을 지키고 있다. 순방기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한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에서 여당 내 반 MB 행보가 이 대통령을 '분노의 침묵'으로 빠지게 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7일 순방 이후 첫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었지만 공식적으로 한마디도 내놓지 않았다. 앞뒤 꽉 막힌 상황에서 말문을 닫은 셈이다.
이 대통령을 침묵에 빠지게 한 여당 혁신파의 요구에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청와대와 정부의 쇄신은 이 대통령이 해야지 여당이나 여론에 떠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내 소장파는 현정부 들어 다섯 번째(2008년 미 쇠고기 수입, 2009년 4ㆍ29 재보선, 2010년 6ㆍ2 지방선거, 2011년 4ㆍ27 재보선, 10ㆍ26 재보선) 쇄신안을 내놓았다" 면서 "불과 6개월 전과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에서도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읽은 민심을 정책이나 조직개편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책변화와 조직개편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10ㆍ26 재보선 이후 강한 요구를 받고 있는 임태희 대통령실장, 백용호 정책실장 등의 교체가 고려되고 있지만 시기는 이 대통령이 밝혔듯 2040 정책 점검과 예산 시즌이 끝난 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총선출마 의사를 이미 밝힌 김대식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등 차관급 인사를 이번주 중 진행하는 등 차관 인사를 단행하며 자리를 만들고 후임인사의 숨통을 틔울 예정이다. 인사를 미루는 청와대의 속내는 10ㆍ26 재보선에 대한 책임의 화살이 시간이 흐른 후 조금은 비켜가기를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하는 또 다른 일은 청와대 조직개편.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출마하려는 청와대 측근들을 내보내야 하지만 후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청와대에서는 비서관급 3~4명 정도가 출마를 준비하고 서둘러 낙향하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며 정권 후반기를 위한 조직개편도 시기를 못 잡고 있다. 결국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정책점검과 국정개편이 마무리된 후 임 실장 등의 사퇴와 차관 인사, 청와대 조직개편이 맞물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미 이 대통령이 10ㆍ26 재보선 후속조치로 '2040' 정책수렴을 지시한 마당에 추가적인 정치적 액션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겠냐"면서 "지금은 한미 FTA 비준안과 예산안 처리라는 중차대한 국정과제가 놓여 있다"고 말했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정치적 레임덕(권력누수)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인터넷 방송인 나꼼수 등이 대놓고 인신공격성 내용을 방송하고 이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루머가 여과 없이 나오는 상황에서도 대응은 고사하고 반응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레임덕이 빨라 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