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4월2일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이 65조6,800억 원을 넘어서며 소니의 63조5,600억 원보다 2조1,200억원 앞섰다. 사상 최초로 삼성전자와 소니의 위상이 역전된 것. 당연한 수순처럼 국내외 언론들이 삼성전자의 성공신화를 재조명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하지만 바로 그 시점에 각 계열사 사장들을 긴급 소집해 “경영성과가 좋다고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을 지녀야 한다”며 축제 분위기완 거꾸로 ‘위기감각’을 요구했다. 이 회장의 경고는 극도의 ‘부자 몸조심’인가.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이와 관련, “1955년 미국 500대 기업에 선정됐던 업체들 가운데 94년까지 생존한 것은 160개에 불과하다”며 “경영에서 영원한 1등은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의 성공이 앞으로의 성공을 100%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 오히려 성공에 도취되면 바로 다음 순간 위기가 다가온다는 점 등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유기체 같은 창조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속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과거처럼 앞선 자를 따르거나 카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차별성과 독자성을 갖춰야 한다. 금융업계에서 ‘굼벵이’, ‘시골신사’ 등으로 불리던 HSBC. 2000년까지만 해도 세계 10위권 언저리에서 맴돌던 HSBC는 2002년 금융계의 황태자로 불리던 씨티를 제치고 자산순위 1위에 올랐다. 눈에 잘 띄지도 않던 HSBC가 금융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힘과 배경은 무엇인가. HSBC는 98년 이후 금융업계에 진행된 인수합병(M&A) 열풍에서 ‘1+1=2’가 아닌 ‘1+1=∞’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씨티나 체이스 맨하탄 등이 더 많은 합병을 위해 열을 올리고 있는 동안 HSBC는 임직원의 창조성을 높이고 합병한 금융회사와 기존 임직원들 사이에 유기적 결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힘을 쏟았다. 컨설팅업체인 AT 커니의 수석 분석가 그램 K 딘스와 프리츠 크뢰거는 “씨티는 단순 이익만을 좇았다”며 “M&A 등으로 외형이 성장한 기업이 하나의 유기체로 변해 창조적인 결과물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도전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구축해 놓는 것. 이건희 회장이 우리 시대에 요구하고 있는 ‘창조경영’이란 바로 이 ‘유기체적인 창조력’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변화를 선도해야 고래를 잡는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생존의 전제조건이다. 나아가 변화를 선도할 수 있다면 먹이사슬의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는 ‘선수’를 잡는 것이다. 라면전문 체인점인 ‘틈새라면’. 올해초 이 회사는 라면시장의 절대 강자인 ‘신라면’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시장 장악력이나, 유통망 등등을 감안할 때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틈새라면은 ‘빨계떡(고추처럼 빨갛고, 계란과 떡이 들어가 있는 아주 매운 라면)’이란 자신만의 제품을 개발했고 라면 전문체인점이란 새로운 사업을 탄생시켜 ‘라면 한가지 아이템으로는 누구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시장 전문가들은 “틈새라면이 라면시장을 장악한 것은 아니라”라면서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틈새라면이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접근해 독자적인 시장을 구축하는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최근 경영학계에서 구체화시키고 있는 ‘와해성 혁신자(disruptive innovator)’는 이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개념이다. 와해성 혁신자는 주력시장이 요구하는 성능과는 차별화된 요소로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신시장이나 틈새시장을 찾는 사람들이란 의미. 달리 표현하면 창조적 경영능력을 갖춘 자를 뜻한다. ◇새로운 지평을 끝없이 찾아라= 지난해부터 미국ㆍ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노골적으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를 견제하기 시작했다. 아예 ‘타도 한국’을 외치며 합작을 하는가 하면 양사가 장악하고 있는 낸드 플래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혈안이다. 여기다 중국은 LCD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 “기술 격차가 커서 당분간은 경쟁이 안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들은 자신감을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역사를 되짚어보면 마냥 한가로울 수는 없다. 20세기 초 영국과 네덜란드 등이 독점했던 조선산업은 1960년대 이후 일본을 거쳐 한국ㆍ중국으로 그 중심이 옮겨왔다. PC산업의 중심도 미국ㆍ일본ㆍ대만ㆍ한국을 차례로 거쳐 중국으로 갔다. 반도체도 70년대 미국 독점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주도권이 이전됐다. 마치 거대한 순환고리를 따라 자리 바꿈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우리 기업들에게도 언젠가 위기는 닥쳐온다. 한 곳(시장 또는 제품)에 머물렀다간 언제 변했는지도 모르는 계절의 혹독함에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 이 점에서 이건희 회장의 창조경영은 유목민적 기업가정신과 맥을 같이한다. 기술적 난이도와 부가가치가 낮은 분야를 버리고 고도화되고 부가가치도 높은 분야로 끊임 없이 옮겨가는 유목민적 경영마인드를 실천할 때 생존도 보장되며, 시장지배력도 유지되기 마련이다. [내가 보는 창조경영]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미래 수요자 욕구 자극해 고부가 창출" ‘벤처 1세대’로 불리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대학 3학년때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한 조 대표가 말하는 창조경영은. ▦나는 창조경영을 ‘미래사용자의 욕구창조’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에디슨처럼 말이다. 세계를 경영하는 것은 세상에 없었던 제품으로 수요자의 욕구를 자극해 고부가가치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믿는다. 불과 30년전만해도 삼성전자는 1위 기업이 아니었다. 부동의 1위에 밀려있던 삼성전자가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의 창조경영은 삼성전자 발전의 연장선상에서 태어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도전’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