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중소기업 생존위기 여전

■ 주물·레미콘업계 납품 재개 10일째… 지금 현장에선<br>"치솟는 원자재값에 한치 앞도 안보인다" <br>아스콘·플라스틱·업계등은 협상 진척 없어<br>일부 업체는 '괘씸죄' 걸려 보복 당하기도


지난달 21일 주물과 레미콘 업계가 납품을 재개한 지 10일이 지났지만 원자재가 파동으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생존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물과 레미콘만 단가 인상에 성공했을 뿐 아스콘ㆍ플라스틱ㆍ골판지포장 등의 업계는 아직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 단가 인상과 더불어 이들이 중요하게 주장해온 제도 개선은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아스콘 업계가 1일부터 납품 중단에 들어간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최소한 적자 생산을 면할 수 있는 단가 인상과 이를 항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 마련 없이는 언제든 거리로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부만 단가 인상, 일부는 ‘괘씸죄’ 보복도=원자재가 파동으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실력 행사는 지난 2월29일 주물업체들이 납품 중단을 경고하는 결의대회부터 시작됐다. 이후 당초 예정대로 지난달 7일 주물업체들이 3일간의 한시 납품 중단에 들어가면서 레미콘ㆍ유화ㆍ아스콘ㆍ골판지포장 등의 업계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현재 단가 협상이 타결된 곳은 주물과 레미콘뿐이다. 그나마 주물은 GM대우 등 외국계 자동차 회사들의 협상 기피로 완전 타결을 못하고 있으며 레미콘 역시 경인 지역을 제외한 지방 소재 기업들은 아직도 협상 중이다. 아스콘 업계는 납품가 인상 요구를 조달청이 받아들여주지 않음에 따라 이날부터 납품을 중단했다. 이들은 유가 인상으로 대기업들이 아스콘 가격을 대폭 올렸는데도 조달청이 이를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 납품을 하지 않는 게 그나마 손해를 줄이는 길이라고 항변했다. 이달부터 납품 중단을 예고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플라스틱 업계는 납품 중단 등의 극단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현재 이들은 조달청과 납품가 협상을 진행 중으로 서로 주장하는 가격 차이를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콩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업종 특성상 가격을 거의 올리지 못한 두부업계는 가격 인상은커녕 최근 정부의 생필품가격 관리대상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장휘 연식품협동조합 전무는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감안하면 두부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라야 하지만 두부가 특별관리품목 52개 안에 들어가면서 제조업체들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가격 인상은 아예 물 건너갔다”고 밝혔다. 이밖에 골판지포장은 대기업에 포장상자 가격의 19.8% 인상을 요구하며 협상 중이다.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협상 이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번 납품 중단에 참가한 업체는 ‘괘씸죄’에 걸려 납품물량이 대거 감축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은 “대기업인 S전자에 납품하는 1차 벤더가 3곳 있는데 이중 이번 납품 중단에 참가한 2곳은 물량이 대폭 줄었고 참가하지 않은 나머지 1곳은 그대로 유지됐다”며 “대기업들의 이 같은 보복 행태를 조사해 발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소재업종의 한 조합 이사장은 “다른 업종의 중소기업들은 사정이 좋아서 거리로 나서지 않았겠느냐”며 “뛰쳐나가고 싶어도 바로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바로 보복이 들어오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납품가 연동제 등 근본 대책은 요원=일부 업종의 단가 인상 외에 이번 사태의 근본 해결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주물업계가 좋은 사례다. 주물업체들이 이번에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은 고철 가격이 올 들어서만 ㎏당 170원 올라 원가 압박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단가 협상 과정에서 또다시 ㎏당 30원이 올랐다. 단가 협상이 완전 타결되기도 전에 다시 오른 고철 가격을 누구에게 말해야 되는지 주물업체들은 난감해 하고 있다. 주물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제 겨우 협상을 끝냈는데 다시 협상을 하자고 하면 대기업이 귓등으로라도 들어주겠느냐”며 “오르기만 하는 원자재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레미콘ㆍ아스콘 등의 업계는 조달청 납품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게 큰 불만이다. 레미콘 업계는 조달청이 현재의 자유경쟁 입찰 대신 입찰수량을 업체당 전년 대비 110%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자유경쟁 입찰제 도입 이후 일부 대기업 계열 레미콘 업체들의 독식 체제가 굳어져 중소 업체들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아스콘 업계는 실재하지도 않는 민수가격을 기준으로 관수가격을 정하는 현 시스템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아스콘 업계는 “조달청이 대기업에 통합 발주하고 이를 수주한 대기업이 아스콘 업체에 재발주하는 부분을 민수라고 하는데 이는 결국 관수”라며 “대기업의 이익을 위한 통합 발주만 중지해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소기업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근본 해결책은 원자재가와 납품가의 연동제다. 연동제는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공식적으로는 도입이 결정됐다. 하지만 중기청만 이에 동조할 뿐 지식경제부ㆍ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부처는 현실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서로 떠넘기기에 바쁘다. 중소기업들 역시 실제 도입에 대한 기대치는 높지 않다. 경인주물공업단지 내 A사의 한 관계자는 “연동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원자재 값 상승분의 최소치만 따라가지 않겠냐”며 “100원이 올랐는데 20~30원만 반영된다면 ‘이름만 연동제’일 뿐 실제 효과는 미미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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