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4세인 한승민(가명) 씨는 3년전 청약저축에 가입했다. 최근 청약 가점제의 내용이 발표됐지만 한 씨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전용 25.7평 이하 공공주택에 청약할 수 있는 청약저축은 불입액에 따라 당첨자를 정하는 순차제가 존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씨의 아내가 결혼 전 일찌감치 가입해 뒀던 청약부금은 가점제 시행 이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어 고민이다. 비 세대주인 아내 명의의 부금통장은 가점제 점수를 전혀 받을 수가 없다. 세대주를 아내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러면 ‘무주택 세대주’가 전제조건인 한 씨의 청약저축 통장은 효력을 상실한다. 3년밖에 안된 청약저축으로는 웬만한 인기 청약지에 명함도 내밀기가 힘들어도 지금 상황으로는 청약저축을 유지하는 게 그나마 이익이다. 가점제 시행 이전에 부금통장을 쓰는 방법도 있지만 요즘처럼 공영주택 위주의 분양시장에서 조건에 맞는 민영주택 청약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더 나은 곳을 기다려보자”며 청약을 미뤄왔던 게 후회스러울 뿐이다. 정부가 ‘1가구 1청약통장’ 시대를 마감하고 만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예ㆍ부금에 가입할 수 있게 한 것은 지난 2000년 3월부터다. IMF 외환위기 극복과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 고육책으로 내 놨던 정책이었다. 청약통장 가입 자유화는 분양 아파트에 대한 ‘투자수요’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 마련 기회를 넓혀주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중소형 민영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청약부금의 경우 세대주는 청약저축, 비세대주는 부ㆍ예금에 가입하는 형태가 일반화돼 왔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부터 청약 가점제가 시행되면 무주택 기간과 가족수,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비세대주의 부금ㆍ예금(전용 25.7평 이하) 통장은 쓸 수 없게 된다. 가점제가 ‘세대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비 세대주는 사실상 제도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 35세, 노부모 부양, 자녀 2명, 무주택 기간 5년, 부금 가입기간 5년의 똑 같은 조건을 가진 세대주 A씨와 비세대주 B씨를 비교해 보자. 가점제가 시행되면 세대주 A씨는 나이 60점, 부양가족 175점, 무주택 기간 128점, 가입기간 52점으로 총점 415점을 받는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77점에 해당한다. 그러나 비세대주인 B씨의 점수는 조건이 똑같아도 가입기간 52점이 전부다. 100점 만점에 9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당국은 중소형 청약이 가능한 청약예ㆍ부금 가입자 295만명 중 통장이 무용지물로 변하는 이해 당사자의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함영진 내집마련정보사 팀장은 “1인 1통장 시대가 시작되면서 대부분 가정에서 청약예ㆍ부금 통장 하나씩은 갖고 있는 현실”이라며 “비세대주인 경우 세대분리 등의 방법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