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본문화 개방과 한류

추사 또는 완당이라는 호로 널리 알려진 김정희는 흔히 조선 시대 최고의 예술가로 불린다. 괴기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지닌 추사의 예술세계는 조선은 물론이고 청나라에까지 그 명성이 두로 알려져 한중 양국간의 문화ㆍ예술교류에 인상적인 자취를 남겼다. 특히 청나라의 대표적 학자였던 완원(阮元)은 김정희에게 `완당`이라는 호를 선물했고, 정조경은 “선생의 문장과 학문을 오랫동안 흠모해왔다”라는 내용과 함께 추사에게 보낸 그림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당대에 이뤄졌던 문화 교류의 현장을 실감나게 전해주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일본과는 크고 작은 전쟁을 겪는 바람에 획기적인 문화 교류의 현장을 찾아내기가 쉽지는 않으나, 일본을 왕래했던 통신사들의 역정을 통해 약간의 편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통신사들의 방일기록을 보면 사무라이 등을 포함해 일본의 고관대작들이 우리네 선비들의 글을 받으려고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는 기록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 이전에 동아시아의 문화교류가 서구의 그것처럼 활발하지 못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증거를 동원할 필요 없이 상식처럼 되어 있다. 수세기 전에 한중일(韓中日)의 문화교류가 정체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당대의 쇄국정책 탓이 컸다. 우리는 대원군으로 상징되는 조선말기의 쇄국정책이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는 교육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그러나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에 밀려오기 전에는 한중일 모두 쇄국정책의 길을 걸었다. 일본의 국민화가로 추앙받고 있는 설주(雪舟)는 15세기에 활동했는데, 그의 중국 여행기가 당시의 대표적인 해외 교류기로 지금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하고도 제대로 된 교류가 별로 없었다는 반증이다. 일본을 근대로 이끈 명치유신도 따지고 보면 동경 앞바다에 철갑선을 띄운 미국에 대한 저항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너무 강한 서구`로부터 나라를 구하자고 시작한 운동이 명치유신이라는 근대화 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내년부터는 일본문화가 전면개방된다. 누구는 너무 이르다 하고, 누구는 너무 늦었다고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런 뉴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작금의 한일 관계는 `개방`이라는 말을 운위하기 조차 쑥스러울 정도로 이미 상호침투가 활발하다. 이제까지 일본문화의 개방을 반대했던 논리의 이면에는 `일본문화 절대 우위`라는 명제가 깔려있었다. 일본문화가 개방되면 우리 문화가 즉시 후지산에 혼을 빼앗긴다는 열등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 등 동남아 일대를 휩쓸고 있는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원빈, 배용준, 최지우 등 한국 연예인들이 열렬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주 개봉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영화 `스캔들`의 시사회 때에는 일본과 대만의 연예부 기자들이 대거 방한 해 주인공 배용준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을 정도이다. 중국에서는 `한류 경계론`이 퍼질 정도로 한국문화의 영향이 커 현지에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정도이다. 중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김희선이나 안재욱의 얼굴을 담은 입갑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TV에서는 철지난 한국 드라마들이 열심히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전지현은 중국에서는 더욱 큰 대박을 터트려 중국 현지 기업들을 상대로 한 CF 모델료만 수십억원을 챙길 수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의 경우 중국에서 정식 상영은 되지 않았지만 불법 복제 비디오로 이 영화를 관람한 중국 관객들이 최소 1억 명은 넘을 것이라는 비공식 통계도 나와있다. 때문에 중국 청량음료의 CF에 등장한 전지현은 중국어는 물론 `시원해요`, `맛있어요`와 같은 한국어 발음으로 연기를 할 정도이다. 중국의 소비자들이 한국어로 말하는 전지현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한국은 이제 외국 문화의 침투를 우려하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외국에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있을까. 실질적인 구매력 기준(PPP)으로 본 국가 총생산은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일본은 3위, 한국은 9위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로 한중일로 구성된 동북아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강하다. 그리고 지금 세 나라의 문화는 서로 합쳐지는 화학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요즘 같은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대중문화의 영향이 막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문화산업은 한가한 이야기다`고 치부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엘리트 계층에 아직까지 많은 것을 보면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용웅(문화부장) >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