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한 현대그룹의 지배권을 둘러싼 집안싸움이 점입가경이다.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17일 현대 엘리베이터의 국민기업화를 전격 선언한 것은 시숙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주식매집으로 그룹의 지배권을 빼앗길 위험에 직면한 데 대한 대응책으로 보인다. 자신이 소유권을 포기하는 대신 `주인없는 기업`으로 만들어 다른 쪽도 넘보지 못하도록 하는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것이다.
민간기업의 소유권 다툼에 대해 왈가왈부 할 이유는 없지만 이번 경우는 그 파장이 소액주주 등 일반인에게도 영향을 미칠 단계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현대측이 대북사업을 `볼모`로 내세우고 `국민기업` 운운하고 있는 마당이어서 마냔 방치할 수 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현대가의 집안싸움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두 진영간의 다툼은 내부마찰과 사업차질로 현대그룹의 장래를 어둡게 할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에도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대북사업이 `볼모`가 됨으로써 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희석되고 나아가 남북경협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현대그룹 지배권 다툼이 이런 식으로 격화된다면 사태는 더욱 꼬이고 장기화 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공모가 제대로 될 지 미지수다. 집안싸움에 들러리를 서는 기분이라면 누가 증자에 호응하겠나. 주가 하락세가 계속될 경우 청약률이 현회장측의 기대에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더해 증자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수가 급격히 늘어나면 주가는 더 큰 폭으로 떨어질 수 있어 기존 주주들만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KCC측이 이번 이사회 결의 사항에 대한 법적 검토에 착수하는 등 또다시 공격을 가할 태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관측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 같은 이전투구가 지속된다면 회사는 만신창이가 될 게 분명하다.
두 진영은 지금이라도 소모적인 싸움을 끝내고 협력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왕자의 난`으로 불렸던 지난 날의 형제간 다툼으로 인해 현대그룹이 재계 1위의 자리를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했던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두 진영의 경영권다툼은 아직도 기업을 오너 개인이나 일가 친족의 소유물로 여기는 국내 재벌기업의 구태적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정부도 차제에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와 소유주에 대한 견제 장치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민간기업이 추진하는 대북사업이라 하더라도 정부의 직ㆍ간접 지원을 받을 경우에는 대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한동수기자 best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