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벼랑끝에 선 은행] 대우부실 눈덩이 다시 '배트뱅크'로

은행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대우 부실 쯤이야」 대손충당금을 쌓아 모두 정리해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을 맞출 수 있다는 게 은행들의 계산이었다.그러나 연말이 가까와지면서 이같은 자신감은 점차 「퇴색된 구호」로 바뀌고 있다. 충당금을 쌓더라도 부실여신을 정리할 방법이 없다. 워크아웃을 추진중인 대우 계열사에 얼마나 쏟아부어야 살려낼 수 있을지 계산이 안나온다. 결국 덤터기가 무한증식되면서 은행들을 나락으로 잡아끌 것이란 걱정이 자신감을 압도하고 있다. ◇연내 부실청소 어려울 듯= 이수길(李洙吉) 한빛은행 부행장은 『부실여신 2조원 어치를 성업공사에 매각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당분간 갖고 있기로 했다』고 말한다. 이는 대다수 은행들이 마찬가지다. 국내 유일의 「종말처리업자」인 성업공사가 부실채권을 사들일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무보증 대우채권 18조원 규모를 투신사들로부터 매입해야 하는데, 환율방어 「예비군」동원명령까지 받았다. 은행들은 성업공사에 부실을 넘기기 어렵다면, 자체적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외국 합작선을 잡는데 애를 먹고 있다. ◇피할 곳 없는 은행들= 은행이 부실을 털어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그만큼의 이익을 내 충당금으로 상각하거나, 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대형 시중은행들의 올해 예상이익은 각각 1조~1조6,000억원 안팎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12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대우 손실에 비하면 「코끼리 비스켓」이다. 자본확충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빛은행이 지난 8월, 10억달러의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한 뒤로 은행들의 해외 자본확충은 완전 중단됐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대우가 완전히 청소될 때까지는 외국에 나가서 자본을 끌어들이는 방법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올해말부터 여신분류 새 기준(FLC)이 도입되면 은행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불안한 여신은 모두 부실로 낙인찍어야 해외투자가들의 신뢰를 얻어낼 수 있다. ◇돈먹는 불가사리, 대우= 은행들은 대우사태로 인한 금융교란을 막기 위해 채권시장안정기금을 무제한으로 조성키로 합의해 놓고 있어 자금부담이 얼마에 달할지 예상키 어려운 상황이다. 채권값이 떨어지면 고스란히 타격을 입는다.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대우 계열사가 언제 정상화될지 장담키 어렵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기업의 가장 큰 밑천은 신용인데, 대우그룹 전체가 풍지박산난 마당에 국내외에서 물건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며 『금융권 도움만으로 영업을 하다가 은행마저 수렁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은행들은 지난 7월19일 4조원의 자금을 대우에 긴급 지원했는데, 앞으로도 워크아웃이란 미명하에 엄청난 덤터기를 고스란히 써야할 것으로 보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절반의 클린뱅크로 21세기 맞이= 금융연구원 손상호(孫祥皓)박사는 『은행들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이상 숨길게 없다는 사실을 입증받아야 한다』며 『가급적이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孫박사는 『장부상 뿐만 아니라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관행(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진정한 클린뱅크로 거듭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대우여신이 별로 없는 대다수 후발은행의 경우, 올해안에 부실을 청소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형 은행들은 절반의 클린뱅크로 새 천년을 시작하게 되며 일부 은행은 내년에도 클린뱅크의 문턱을 넘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개입해 공적자금을 넣어 부실을 희석시켜주는 방법 밖에 없다. 공적자금 추가투입은 「은행 2차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대우사태가 어디로 튀느냐에 따라 일부 은행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다. 한상복기자SBHA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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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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