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불투명해지면서 국내 상장사들이 비상장사와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 비상장사의 경우 상법 개정에 따라 파생결합사채을 발행하고 자유롭게 주식 소각을 할 수 있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은 상법 개정 내용을 반영하지 못해 상장사들이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파생결합사채 발행과 자유로운 주식 소각 등의 내용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이 내달 15일 시행에 돌입한다. 이에 따라 비상장사는 법 시행과 동시에 다양한 방법으로 자금조달을 할 수 있게 되는 등 개정 내용을 곧바로 반영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정작 국내 증시에 상장돼 있는 기업들은 이러한 혜택을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개정 상법의 내용이 현재의 자본시장법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바뀐 상법에 맞춰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했지만 통과가 무산되면서 상장사가 비(非)상장기업에 비해 역차별 받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 한 관계자는 “특례법인 자본시장법은 상장사에 우선 적용된다는 특성상 모든 회사와 관련된 상법의 내용을 모두 반영해야 하는 게 정상”이라며 “하지만 자본시장법 개정안 국회 통과가 없던 일로 되면서 양 법간 내용이 다르게 명시돼 앞으로 혼란이 예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정 상법과 현행 자본시장법간 불일치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파생결합사채 발행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정 상법의 경우, 파생결합사채 등을 사채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주가연계증권(ELS)과 파생결합증권(DLS) 등의 특성을 지닌 파생결합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반면 자본시장법상 파생결합상품은 ‘인가를 받은 금융투자회사만이 발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일반 기업인 상장회사들은 같은 성격의 파생결합사채 발행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파생결합사채 등을 사채로 규정한다는 쪽으로 상법이 개정됐다”며 “이에 따라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도 원금보장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발행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국회 통과가 무산돼 소용 없게 됐다”고 말했다.
주가부양이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기주식 소각 부문에서도 상장사들은 족쇄가 채워진 상태다. 상법 개정으로 비상장기업은 매수시기와는 상관없이 자기주식에 대한 이익소각이 가능하다. 그러나 상장사는 이사회 의결 뒤 사들인 자기주식 만으로 이익소각에 나서야 한다. 장외기업은 추가 매수 없이도 자유롭게 이익소각을 할 수 있지만 상장회사는 증시 내에서 새롭게 자기주식을 사들여야 하는 단서 조항이 달려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러 혼란이 예상되자 금융당국도 다시 한번 자본시장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총선 등에 밀려 있지만 앞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중요도를 부각시켜 국회 통과라는 결실을 맺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아쉽게도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며 “개정안 자체가 중요한 만큼 선거 뒤 마지막으로 열리는 정기 국회에 다시 상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