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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이 중국 시장의 문을 처음 두드린 것은 1996년 2월. 베이징 사무소를 개설하고 사업 대상을 물색하며 시장 진출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결실은 10년 가까이 지난 2004년 6월 거뒀다. 중국 2위의 발전회사인 다탕전력그룹(大唐集團)과 풍력발전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한다. 중국 현지 사정과 1998년 IMF 외환위기 여파 등으로 타진하던 주요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취소되는 등 진통 끝에 맺은 첫 열매였다.
조죽현 베이징 지사장은 "한 번 사귀면 둘도 없는 '관시(關係)'가 되지만 그 관계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만들어낸 인연"이라며 "한전의 중국 사업 역사도 그렇게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전은 현재 중국 산시성·네이멍구·간쑤성·랴오닝성에 총 6억9,000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이 중 화력발전소와 탄광 등을 운영하고 있는 산시성 격맹국제(格盟國際) 합자사업(이하 총 발전용량 6,887㎿)이 4억5,000만달러로 가장 크고 네이멍구 풍력사업(1,315㎿)이 2억4,000만달러로 뒤를 잇고 있다. 한전 차이나 에너지 영토의 최전선인 네이멍구 둥산발전소와 산시성 허포발전소에 다녀왔다.
◇대초원에서 꽃핀 청정에너지의 꿈=지난달 23일 이른 아침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500㎞를 날아갔다. 1시간여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네이멍구 자치구 츠펑시. 공항에서 다시 차를 타고 외곽으로 벗어나자 곧 구릉지 형태의 넓디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초원에는 방목해놓은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110㎞를 차로 2시간여 달려 도착한 곳은 둥산발전소. 한전과 다탕전력그룹의 자회사 다탕신재생에너지가 합자해 전력을 생산하는 곳이다. 전력 제어센터가 위치한 본부 건물 인근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133대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 발전기의 높이는 최대 67m, 날개 길이는 80m에 이른다. 드넓은 평원 곳곳에 꽂아놓은 발전 타워는 장관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한 길이 없다.
둥산발전소가 위치한 곳은 평균 해발고도 1,650~1,740m에 달한다. 연평균 풍속이 초속 7.38m에 이르고 면적도 1,200만㎡에 달하는 넓은 부지를 갖췄다. 풍력발전소로는 중국 내에서도 최적지로 꼽힌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바람이 적은 여름철임에도 초속 12m에 이르는 강풍이 불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몸이 흔들리고 머리카락이 심하게 휘날렸다.
청정 자연 에너지인 바람을 사용하는 풍력발전은 친환경적이지만 아무래도 중유·석탄·천연가스를 태워 발전하는 화력발전보다 에너지 이용 효율이 떨어진다. 하지만 둥산발전소의 이용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박남련 네이멍구 법인장은 "풍력은 20% 이상이면 손익분기점인데 평상시에도 이용률이 25~26%에 이른다"고 말했다. 친환경과 수익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이다.
◇매간석이 만든 5년 만의 흑자전환=격맹국제는 중국 산시성 정부(산시국제능원)와 한전, 일본 J파워 컨소시엄 등이 출자해 만든 합자회사다. 한전은 2007년 총 사업비 13억3,000만달러(100억위안) 중 4억5,000만달러를 투자해 34%의 지분을 확보한 2대주주가 됐다.
사업 초기 금융위기 및 자원가격 상승으로 적자에 시달려왔지만 2012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사업성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어 앞으로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격맹국제는 올해도 지난해를 웃도는 흑자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할 경우 배당만으로 앞으로 10년이면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격맹국제의 흑자전환에는 매간석이 일등 공신이다. 매간석은 석탄을 캘 때 석탄과 같이 채굴된 다른 암석 또는 석탄을 선별하고 남은 부스러기다. 질이 좋지 않은 저열량탄이지만 한전은 이를 친환경 기술인 순환유동층발전(CFBC) 방식으로 극복했다. 유영석 산시성 법인장은 "매간석 발전소는 발전원가의 40%밖에 들지 않는데다 중국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도 부합한다"며 "매간석 발전 비중을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격맹국제는 매간석 발전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앞으로 새로 짓는 발전소는 전부 매간석 발전소로 건설할 계획이다. 허포 3기 발전소도 그중 하나다. 허포발전소는 현재 1기와 2기가 운영되고 있으며 발전용량 700㎿ 규모의 3기는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22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공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에너지 사업, 대계를 세워라=중국 현지에서 만난 한전 관계자들은 공익성이 강조되는 국내 사업과 달리 해외 사업은 철저히 수익성 관점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영 중인 사업도 주기적으로 수익성 재평가를 통해 사업구조를 더욱 내실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정부의 에너지 사업 전략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결론은 에너지 사업의 대계(大 計)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사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고 기다리는 안목이 중요한데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사업을 접거나 아예 철수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에너지 사업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도 장래성을 보고 판단하는 전략적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며 "회사에 손실이 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개발에 나서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 등 무형의 가치가 계속 쌓일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멍구 츠펑·산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