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가시지 않는 출구전략 여진] 보유외환 방출…금리 인상… 신흥국 역환율전쟁

화폐가치 절하에 혈안 됐던 기존 정책서180도 선회<br>금리 올려 자금 유출 방지<br>인ㆍ브라질 등 줄줄이 인상… 터키도 시기ㆍ폭 저울질


얼마 전까지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느라 혈안이 됐던 신흥국들이 화폐가치 급락을 막기 위해 앞 다퉈 보유외환을 방출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등 외환시장에 지금까지와는 180도 다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선진 각국이 돈을 찍어내 통화 절하를 유도하고 이웃국가의 수출경쟁력을 갉아먹던 종전의 환율전쟁과는 반대로 신흥 각국이 미국 출구전략 우려에 따른 자본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통화방어 정책을 쏟아내는 '역(逆)'환율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15일 인도중앙은행(RBI)은 시중은행 간 금리, 긴급자금대출 금리를 각각 10.25%로 2%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만모한 싱 총리와 팔라니아판 치담바람 재무장관, RBI의 두부리 수바라오 총재가 연쇄 긴급회동을 가진 후 나온 조치로 전문가들은 인도가 10년래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와중에 파격적인 대책을 내놨다고 평가하고 있다. 인도 재무부도 이날 1,200억루피 규모의 국채를 발행해 시중의 루피화를 흡수, 통화방어를 위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정부는 외환시장을 면밀히 모니터해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터키 중앙은행도 이날 이례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을 강력 시사했다. 에르뎀 바시츠 터키 중앙은행 총재는 "현재 3.5%~6.5%인 기준금리 폭을 넓히는 것을 신중하게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오는 23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폭 상한선이 7%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폭을 올린 것은 2011년 10월이 마지막이었다.

일부 국가들은 이미 기준금리를 대폭 끌어올린 상태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는 불과 3개월 사이 기준금리를 각각 1.25%포인트, 0.75%포인트 인상했다. 이들은 미 출구전략 우려 속에 헤알화, 루피아화 가치가 들썩이자 저성장을 각오하고 일찌감치 기준금리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최근 신흥국들이 꺼내 들기 시작한 금리인상 카드는 미국의 출구전략 가능성에 그동안 신흥국으로 유입됐던 자금이 대거 유출되고 자국 화폐가치가 급락하자 글로벌 자금을 붙잡기 위해 내놓는 고육지책이다. 지난 2개월 동안 신흥국에서 급속도로 빠져나간 글로벌 자금이 멕시코나 중동 등 일부 국가들로 돌아가기 시작한 가운데 지속적인 자금이탈에 시달리는 국가들이 그간의 대증요법도 먹히지 않자 통화방어를 위해 경쟁적으로 긴축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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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지난주 시중은행들이 은행 자기자본을 통해 외환선물을 거래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증권사에도 외환파생상품을 고객에게 비싸게 팔도록 강제해 관련 상품이 덜 팔리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루피화 가치 하락 압력은 줄어들지 않아 달러 대비 루피화 가치는 사상최저수준인 달러당 60루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터키 역시 지난 8일 하루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인 22억5,000만달러를 시중에 푸는 등 지난 두 달간 중앙은행 보유외환의 10% 이상을 소비했지만 리라화 가치는 여전히 달러당 1.93리라 수준에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신흥국이 잇달아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빼 들면서 경제 성장률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수개월 전 환율전쟁에서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입었던 신흥국들이 이번에는 '역 환율전쟁'으로 심각한 저성장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ICICI증권의 프라산나 아난사수브라마니안 이코노미스트는 "저성장에 시달리는 인도가 시중은행 금리를 올린 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라며 "이는 전체 금리를 올릴 뿐만 아니라 유동성도 줄이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에 전년 대비 5% 성장해 10년래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인도가 올해도 휘청일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터키도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면서 올해 정부 성장 목표치인 4%도 달성이 불투명해졌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의 1ㆍ4분기 경제성장률은 약 6%로 2년래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브라질도 1ㆍ4분기 성장률이 1.9%로 정부 목표치(3%)에 크게 못 미친 가운데 금리인상으로 한층 저성장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신흥국들의 고충이 커져가는 가운데 주요20개국(G20) 경제 수장들이 19~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이와 관련해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최근 "출구전략은 예측가능하고 일관성 있게 진행돼야 한다"며 "G20 모두가 이에 동의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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