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KB 사태로 본 국내 금융사 지배구조 취약점(3)

위인설관式 지주체제 수술해야 '제2 KB사태' 막는다


KB금융 사태에서 확인된 국내 금융사 지배구조의 취약점은 우리나라 금융산업 특수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금융지주체제의 짧은 역사 △은행의 과도한 비중 △오너십의 부재 등이 꼽히는데 지배구조 리스크가 주로 사람과 그릇된 관행에서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산업의 특성을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운영의 묘로 막아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회장과 행장의 책임과 권한을 명확히 하고 '옥상옥'에 '위인설관'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지주회사 체제의 운영상에서 드러나는 결함을 차제에 손질하는 등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수술 작업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결국 시스템보단 운영의 묘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지주 체제에 대한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금융지주 체제가 도입 취지와 달리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데다 은행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금융산업 특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금융지주 체제는 운영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잇따른 지배구조 리스크는 1인자와 2인자 간 권력암투라는 공통점이 있다. 쉽게 말해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의 문제라는 것이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산업이 대형화·겸업화되는 상황에서 지주사라는 컨트롤타워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또 금융지주체제가 아니라면 결국 은행이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하는데 비은행 비중이 높아질수록 또 다른 형태의 권력대결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한 금융지주 고위관계자는 "2001년 처음으로 지주사 체제가 도입됐을 때 지주사와 은행 간 반목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부분이 다듬어졌다"며 "지주사 체제를 버리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주사 구조에 디테일 가미를


금융지주 체제가 도입 초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잇따른 지배구조 리스크는 사람과 그릇된 관행에서 비롯됐다. 시스템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권력암투로 이어지는 것이다.

2011년 금융감독원은 국내 금융사들로 하여금 '경영자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많은 금융지주사가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내용은 부실했다. 금융사 스스로 적극적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당국의 지침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회장후보자 자격요건으로 △금융산업에 대한 높은 식견 △지주사 시스템에 대한 이해 △그룹을 이끌 만한 리더십 등을 제시하고 있다. 자격요건에 구체성이 사라지다 보니 '이현령비현령' 식의 후보추천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회장·행장 권한·책임 명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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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의 권한과 책임의 경계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4대 금융지주 모두 지주사 사장이라는 직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현재 사장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옥상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KB금융사태의 중간 불쏘시개가 됐던 템플스테이 사건도 따지고 보면 회장과 행장 간 서열의 밋밋한 구분에서 비롯됐다. 금융지주 입장에서 보면 은행장은 많은 계열사 중 한 수장일 뿐이다. 그러나 금융지주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할 때 은행장은 다른 계열사 수장들과 다른 대우를 원한다. 이 지점에서 지배구조 리스크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KB 사태의 근본 원인은 국내 금융지주 체제가 '옥상옥' 구조로 돼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지주사의 회장과 은행장 간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합리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CEO 승계·육성 이원적 접근

지금의 KB금융사태와 5년 전 신한사태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로 정통성의 유무를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자리에 집착하느라 조직을 끌어들이는 우를 범한 임영록 KB금융 회장을 보며 정통성이 없는 낙하산의 당연한 결과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KB금융은 4대 금융지주 중에서 유일하게 차기 회장 육성프로그램이 없다. 단지 9인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비상설로 활동할 뿐이다. 특히 회장 후보 리스트를 외부 컨설팅을 통해 작성함으로써 그만큼 외부변수에 휘둘릴 가능성이 높다. KB금융에서 1인자와 2인자 간 갈등이 잦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낙하산 논란을 방지하고 내부직원의 승진 관행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회장승계와 회장 후보 육성의 구분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후계자 양성 과정이 가장 잘돼 있다는 신한금융의 경우 주력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회장 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또 이들에 대한 차기 회장 우선권을 보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내부 출신 우대를 통한 정통성 확보가 용이해지고 동시에 낙하산에 대한 사전차단도 가능해진다.

이사회 견제기능 강화해야

이사회의 책임과 권한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KB금융 사태가 막장으로 치달을 동안 지주 이사회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5월 KB금융 사태가 표면화된 지 넉 달 만에 이사회는 "다수의 이사는 조직 안정을 위해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모았다"는 변을 내놓았다.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장이 사임하고 지주사 회장의 직무가 정지된 초유의 경영공백 상태에서 고작 '회장이 알아서 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KB금융 이사회는 이전부터 중립성을 의심받아왔다. 그런데 다른 금융지주사라고 해서 중립성 문제에서 자유로울까.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KB금융 사태의 또 다른 주연은 견제의무를 등한시한 이사회"라며 "대표이사 선임과 해임권한 갖고 있는 이사회가 임 회장에게 사전 메시지라도 보냈다면 전 그룹의 위신이 지금처럼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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