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15일] <1268> 스탠호프


앙상한 몸매에 구부정한 허리, 벗겨진 이마…. 찰스 스탠호프는 신문 풍자화에 단골로 등장했다. 정치가이며 과학자로서 뉴스를 많이 탔기 때문이다. 보수성향의 신문들은 괴이한 모습의 커리커처로 그려댔지만 그는 신문 발전과 지식의 전파에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구텐베르크 이후 3백50여간 이어져온 목제 인쇄기를 대체할 철제인쇄기를 처음 도입한 사람이 바로 스탠호프다. 1753년 2대 스탠호프 백작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이튼스쿨을 거쳐 제네바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뒤 정계에 뛰어들었으나 정치인으로서는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에 동정적인 발언으로 논란에 휘말리고 처남이었던 윌리엄 피트(아들)와 사이도 틀어졌다. 대신 과학자로서는 다방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계산기와 빌딩의 방화ㆍ방재 장비를 발명하고 피아노 조율기도 만들었다. 가장 큰 업적은 1803년의 철제 인쇄기 제작. 재질뿐 아니라 나사 회전 방식을 레버식으로 바꿔 인쇄의 질과 능률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듬해에는 석고를 이용해 인쇄할 페이지 전체의 활자판과 그림을 제작하는 주형 기법까지 개발해냈다. 그의 연쇄적인 발명 이후 인쇄가능 면적이 늘어나고 속도는 4배 이상 빨라졌다. 덕분에 신문의 판형도 커질 수 있었다. 스탠호프는 1816년 12월15일, 63세를 일기로 숨졌지만 아직도 철제인쇄기를 통칭하는 보통명사처럼 종종 사용된다. 그의 가문 중에도 유명한 사람이 많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외삼촌인 피트 수상 집에서 지내다 ‘동방의 여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는 평생 독신으로 중동을 여행했던 레이디 헤스더 스탠호프가 그의 딸이다. 1720년 영국을 뒤흔든 남해회사 투기 사건에서 뇌물수뢰혐의가 밝혀진 직후 사망한 스탠호프 백작이 그의 할아버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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