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고수준 자동차 디젤엔진 개발"멀쩡하게 보이지만 이 차는 3개월 후 반드시 폐기처분 해야 합니다."
현대ㆍ기아 연구개발본부의 김낙산 부장은 자신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만든 지 아홉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곧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까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김 부장이 그의 차를 한해 밖에 못 타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서가 아니다.
김부장의 차는 한해살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외형이나 내부에 갖춰진 모든 기기가 시중에 판매되는 자동차와 똑같다.
'한해살이'인 이유는 시험용이라는데 있다. 승차감은 좋은지, 얼마나 튼튼한지를 마지막까지 꼼꼼하게 따지기 위해 임시 운행허가를 받아 김부장과 팀원들이 타고 다니닌다.
이 차에는 매일의 운전상황을 기록하는 일기장이 있다. 이를 통해 시판 중인 차에 문제점은 없는지를 확인한다.
"신차 하나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평균 500대의 차를 일부러 망가뜨려야 합니다. 한해살이는 그나마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죠. 일부러 벽에 부딪쳐 못쓰게 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도로를 달려보지도 못하는 차도 수두룩합니다."
희생양이 되는 차 속에는 모두 멀쩡한 엔진이 들어있다. 김낙산 부장은 바로 이 엔진을 설계한다. 그가 설계한 엔진도 개발 과정에서 수없이 희생됐고 그 이후엔 신차 시험과정에서 수백 대가 망가졌다.
그런 고난을 넘어 김 부장이 3년 만에 개발한 엔진이 바로 'CRDi'. 국내 최초로 개발된 디젤엔진으로 배기량 1500ㆍ2000㏄급이다. CRDi는 지금 현대자동차가 생산하는 산타페ㆍ트라제ㆍ아반떼에 장착돼 전세계를 달리고 있다.
CRDi는 출력이 높으면서도 연료소비와 배기가스가 적고, 소음진동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김 부장은 CRDi가 '모든 면에서 금메달 감'이라고 말한다. 엔진 출력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에 올라섰다.
CRDi가 나옴으로써 우리나라 자동차업체의 기술력은 벤츠ㆍ아우디ㆍBMW 등 유럽 자동차 메이커를 바짝 따라잡은 것은 물론 혼다ㆍ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 업체에 비해서는 2~3년 앞서게 됐다.
김 부장이 개발한 이 디젤엔진엔 연료를 초 고압으로 압축, 전자제어로 직접 분사하는 방식의 첨단 연료분사장치인 커먼레일(Common Rail System)이 들어있다. 이 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엔진출력을 높이면서 동시에 디젤엔진의 가장 큰 단점인 소음문제를 해결했다.
CRDi 엔진은 디젤엔진승용차를 선호하는 유럽인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고 또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범유럽 이산화탄소(CO2) 규제에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최근 디젤엔진 승용차는 인기가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연비가 높은데다 배기가스도 덜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자동차의 33%정도가 디젤엔진을 장착하고 있지만 2003년 이후엔 휘발유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보다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CRDi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40% 이상의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 김 부장은 CRDi엔진을 장착한 차는 경유 1리터를 넣고 17㎞이상을 달린다고 말했다.
이 엔진을 국내의 모든 승용차에 탑재하면 연간 3,000억 원의 원유를 덜 수입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 부장은 지난 84년 현대자동차에 들어온 이후 줄곧 엔진만 개발해 왔다. 그 동안 알파, 베타, 델타 등 10여 종의 가솔린 엔진을 개발했다. 디젤엔진으로 처음 내놓은 것이 CRDi다.
김 부장은 지금도 새로운 디젤엔진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20년 가까이 엔진과 함께 해왔어요.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경력
▲57년 경북 영천 생
▲80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졸
▲83~84년 대우자동차 연구소
▲84~90년 현대자동차 알파엔진 개발 참여
▲91~95년 〃베타엔진 개발 참여
▲96~97년 〃 승용 디젤엔진 개발참여
▲98년~ 〃 CRDi 승용디젤엔진 개발 총괄
▲한국자동차 공학회 회원
◇심사위원
▲박승덕 한국 표준연구원장(위원장) ▲권영한 한국전기연구원장 ▲김도현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 ▲김진동 서울경제신문사 주필 ▲김충섭 한국화학연구원장 ▲남수우 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과 교수 ▲노정혜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 ▲도철웅 한양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박영일 과학기술부 기획조정심의관 ▲박영필 연세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박호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여종기 LG화학기술연구원장 ▲이희국 LG전자기술원장 ▲정명세 ㈜덕인 회장 ▲최봉대 고려대학교 수학과 교수
문병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