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공룡시대] 선두업체끼리 제휴 "시장독식" 겨냥

MS.야후와 제휴한 삼성전자 살아남고홀로서기 고집하던 하이닉스 생사기로 지난 7월 초 홍콩에서 열린 LG전자와 네덜란드 필립스의 브라운관(CRT) 합작사(LG.필립스 디스플레이) 출범식 자리. 취재진들은 이날 CRT사업이 중ㆍ장기적으로 사양산업이라는 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LG전자와 필립스 양사의 기분 좋은 잔칫날 곤혹스러운 이야기가 주제가 된 것. "시장의 성장속도가 퇴행하기 때문에 오히려 덩치를 키웠다. 경쟁사들이 원가경쟁ㆍ시장축소로 인한 판매부진 등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면 1~2위 기업이 따먹을 수 있는 과일은 전보다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구승평 합작사 부회장은 기다렸다는듯 단호하게 시장의 먹이사슬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지적, 참석자들의 말문을 막았다. 시장의 흐름을 잘못 판단해서 시작한 합작이 아니라 시장이 변하는 방향을 꿰뚫어 이의 길목을 지키기 위해 선택한 '전략적 제휴'라는 것이 구 부회장 논리의 골자였다. 전략적 제휴란 쉽게 말해서 세계 1~3위 업체간 독과점 체제를 구축, 소모적인 경쟁을 피하고 시장을 나눠먹겠다는 것. 당연히 몸집을 최대한 키우게 된다. 이달 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휴렛패커드와 컴팩의 합병 선언은 전략적 제휴의 이 같은 속내를 살필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양사는 델컴퓨터가 선두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PC시장에서 2위와 3위를 기록하며 가슴앓이를 하던 사이. 이번 제휴는 성장속도가 정체된 PC(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더 이상 무한경쟁을 지속한다면 스스로 생존기반을 갉아먹게 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이 제휴는 또 단숨에 델사를 제치고 선두업체로 올라서 시장을 주도하고 초대형 기업들간 과점체제 구성을 통해 군소업체의 시장잠식을 자연스레 억제한다는 전략도 담고 있다. 권영수 LG전자 재경팀장은 "전략적 제휴는 한정된 자원으로 이른 시일내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이라며 "M&A 및 제휴를 통한 세계산업의 경쟁구조 재편의 흐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낙오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양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80년대 초 거의 동시에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한쪽은 지금 세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위상을 구축한 반면 다른 한쪽은 생존의 기로에 위태롭게 서있다. 이 결과를 놓고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 경제조사 기관인 인텔리전스유닛(EIU)은 '전략적 제휴'라는 경영전략의 차이로 설명한다. "삼성은 인텔ㆍ마이크로소프트(MS)ㆍ야후ㆍAOL-타임워너 등 세계유수 기업과 제휴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반면 하이닉스는 홀로서기로 나갔다." 달라진 먹이사슬을 파악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응한 삼성은 탄탄한 생존기반을 갖출 수 있었던 반면 전통적인 생존기법만 고집하던 하이닉스는 시장상황이 변하자마자 위기를 맞게 됐다는 것이 골자. 혼자서는 살기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최근 1~2년새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맺은 각종 전략적 제휴를 살펴보면 이 같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초고속 메모리 반도체 램버스D램 공급협력 및 설비투자 지원(2001년2월, 삼성-인텔), 디지털TV 데이터방송, 홈네트워크, 노트북PC, 인터넷 정보가전 등 각 분야 협력체제 구축 및 신제품 공동 개발(2000년10월, LG전자-인텔) 등등. 기업간 제휴 대상은 최근 어느 한 부분의 단순 제휴에서 벗어나 브랜드ㆍ유통ㆍ금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은 차세대 플래시메모리 규격으로 '메모리 스틱'을 채용, 차세대 기록매체인 메모리 카드 규격 전쟁에서 소니와 동맹을 맺었다. 올 초 LG전자는 세계적 브랜드인 '코카콜라 캠페인 2000'에 공동 마케팅 제휴를 맺었다. 이번 제휴에는 컴팩ㆍ맥도널드도 같이 참여해 업종의 영역을 뛰어넘는 연합전선이 구축된 셈이다. 과거와 달리 단순한 연합만으로는 달라진 생존 여건에서 버티기가 만만하지 않아졌다는 것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한ㆍ일 양국간 정치ㆍ외교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지만 양국 기업들은 오히려 합작이나 전략적 제휴 등을 확대, 확산시키고 있다"며 "글로벌 단위의 경쟁력을 요구하는 최근의 시장환경에선 경쟁업체간 '적과의 동침'도 상식"이라고 말했다. 최형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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