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기술이란 해당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ㆍ문화적ㆍ환경적 조건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보고서에 신흥시장 진출확대를 위한 주요 추진계획으로 적정기술 보급이 등장하면서 정부 부처와 기관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사업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 원조를 위한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개발협력 순위는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 증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1970~1980년대 이미 적정기술을 경험한 국가들의 실패 궤적을 따라가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당시 적정기술에 대한 인도주의적 접근과 비전문성으로 인해 피원조국 시장에서 외면당하거나 경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결국 시장 지향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적정기술 사업이 해당 분야에 경험이 부족한 청년창업 기업과 사회적 기업을 지원 대상으로 하고 있어 과연 얼마나 파급성을 가질지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원조(aid) 관점의 적정기술로 인해 피원조국의 산업발전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적정기술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대부분 아프리카와 같은 저소득국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낮은 수준의 기술이 대부분이다. 이 기술들은 단기적이고 긴급한 문제점은 해결하지만 피원조국의 장기적 경제발전에 기여는 어렵다.
관점을 '원조'가 아닌 '개발(development)'로 확장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적용 가능한 기술 수준과 범위가 넓어지고 피원조국 시장 진출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현지 시장에서 외면당하지 않는 기술개발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 또 저소득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정기술 대상에서 배제되는 중소득국가의 산업발전도 도울 수 있다.
공여국 중소기업과 피원조국 중소기업의 공동 기술협력은 시장성과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개발 관점의 적정기술 보급 사례다. 피원조국 중소기업의 기술발전은 나라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공여국 중소기업은 시장 진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의 생산기지로만 활용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에 반해 중소기업이 피원조국에 진출하게 되면 현지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또 보다 수평적 관계로 사업이 가능해 다국적기업에 비해 노동력 착취 같은 부작용은 적고 장기적인 개발효과는 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