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한림칼럼] 우리나라의 의학수준

조선조 역대 27분의 임금님 중 환갑을 넘겨서 생존하신 분이 5분뿐이고, 평균수명은 41세에 불과했다. 2003년도 발표된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 74세와 비교하면 지난 100년간 생명연장에 큰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조 임금님들은 팔도에서 진상되는 좋은 보약과 산해진미는 다 섭생하고 극진한 보살핌이 있었으나 단명했고 국민 전체의 평균수명도 40세 정도로 추정된다. 100여년 전만해도 보건 개념 이전의 위생에 대해서도 무지해 식수는 물론 전염병 관리 같은 기초적인 것도 시행되지 못했다. 요새 같으면 항생제로 간단히 치료되는 종기로 임금님은 물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했던 그 시대에는 간단한 탈장이나 맹장염(충수염)도 치료가 되지 못하니 온 백성이 단명한 것이다. 지난 1885년 알렌 박사는 선교사의 신분으로 갑신정변에서 치명상을 입은 민영익을 수술로 치료해 완치시켰다. 이는 고종ㆍ민중전 내외분에게 감명을 주어 최초의 병원인 제중원(세브란스병원의 전신)이 개원하게 됐다. 현대의학이 도입된 지 이제 120여년이 지난 셈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일제 통치 기간과 6ㆍ25전쟁 등 질곡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현재와 같은 수준의 의료기관과 보건관리체계를 갖추게 된 것도 의료 인력이 일찍이 국제화(Globalization)에 눈을 뜬 공로다. 우리나라 현대의학은 6ㆍ25전쟁 중에 미군 진료를 위해서 한국에 와 있던 의료진을 접해보고 많이 배운 것이 계기가 돼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후 의사는 물론 간호사까지도 휴전 이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이분들이 미국에서 전문의 과정을 이수하고 귀국해 필자가 의학교육을 받던 50년대에 발전을 이끌어주던 주역이었다. 필자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던 60년대만 해도 베트남전쟁 중이라 미국의 의사가 군의관으로 복무해 의사가 부족했다. 그 결과 외국 출신 의사에게 문호를 개방해 최신 의학을 수련받을 인턴레지던트프로그램(전문의 과정)에 참여해 교육을 받고 미국의사시험은 물론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때 귀국한 사람은 현재의 한국 의학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했고 또 많은 분들은 미국에 영주하면서 상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 인력은 대단히 우수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재로 대우받으며 활동한다. MD앤더슨 암센터의 홍완기 박사가 대표적이다. 국내 의료계의 대학기관에 근무하는 교수진은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그곳의 임상의학은 물론 최근에는 연구 분야까지 섭렵하고 돌아온 세계적 수준의 의사들이다. 많은 분야에서 오히려 미국보다 앞서 있으며, 예로 불임시술은 우리가 미국에 한수 가르쳐주고 최근 줄기세포연구는 미국이 주춤하고 있는 기간에 많은 연구를 해 세계에서 경쟁하고 있다. 위암 및 간암 치료 등의 분야도 일찍부터 우리가 세계에 공헌하고 있다.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가 간단한 병까지도 외국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서 몇 만달러씩 쓰고 오고 고생하는 것을 보면, 그분들도 국내 의료진을 신뢰하고 치료받기를 권하는 바다. 이제 의료시장도 개방돼 외국 의료기관이 국내 경제특구에 개원하고자 하고 정부는 외국 의료기관의 진료비 제한을 푼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필자는 몇 시간 대기에 3분 진료를 받는다는 국민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의료보험 수가로는 이러한 불편이나 걱정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외국 의료기관이 한국 의료기관보다 10배 이상의 진료비를 받고 운영된다면 의료 치료 수준의 차이는 없어도 편리함과 여유로움 등에서 차별이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불편을 덜어드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료계 종사자들 역시 이 같은 기본적인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하나하나 개선하고 있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이해를 바라는 바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