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대기업은 악, 중소기업은 선'이라는 프레임


한동안 떠들썩했던 경제민주화의 계절은 갔다. 이제 대통령도, 장관도, 언론도 상생이나 동반성장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대신 규제완화, 경제활성화, 초이노믹스의 시대다.

초이노믹스는 크게 보면 소득환류와 부동산 띄우기다. 소득환류에는 기업소득 중 일부를 노동소득으로 이전하려는 발상이 들어 있다. 미약하나마 1차 분배인 소득구조를 개선하려는, 보수 치고는 전향적인 현실인식의 편린이 엿보인다.


성장만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할 수 있다던 보수 우파가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는 진보 방안을 채택한 셈이다. 실효성은 일단 차치하자. 다만 ‘기업에 부가 편중돼 근로자, 즉 가계소득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입장을 보인 점은 그 자체로 인정해줄 만하다.

반면 야당을 포함한 진보의 민생 대안은 새로울게 없다. 을지로위원회를 비롯해 야권, 진보세력들은 경제민주화 외엔 메뉴가 없는듯 하다. 경제적 약자를 보듬는 따뜻한 자본주의가 어려운 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원론 뿐이다. 복잡다기한 현실 속에서 각론이 더 중요한 법이지만 한발 더 나아간 지혜로운 경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경제성장률 등 화려한 경제지표보다 경제·사회적 약자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아이디어는 지금이나 앞으로도 귀담아들어야 할 명제다. 그러나 이들 주장을 경청하다 보면 명분과 원칙에만 사로잡혀 현실 인식이 부정확한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잘못된 분석은 틀린 처방을 낳는다. 아무리 의도나 목적이 숭고해도 현실과 괴리된 판단은 개선은 커녕 현상온존이나 개악이란 정반대 결과를 낳는다. ‘대기업은 악(수탈자), 중소기업은 선(피착취자)’이라는 어설프고 이념편향적인 인식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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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부가가치를 빼앗아 배를 불리는 대기업들 때문에 중소기업이 어렵고, 또 중소기업 근로자가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진보 뿐만 아니라 국민 상당수가 갖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 압박(심지어 대기업집단 해체)-> 중소기업으로의 부 이전 -> 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 증가’라는 단순 공식을 완성한뒤 ‘대기업 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서 차분히 따져볼 게 있다. 대기업과 거래관계에 있는 중소기업 비중은 과연 얼마일까?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통계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 기준 50.3%다. 이중 하청금액 비율은 이보다도 적을 것이다. 소액이라도 대기업과 거래하는 기업 수가 그렇다는 것이어서 수출을 많이 하거나 B2C를 겸하는 중소기업까지 감안하면 거래금액 비중은 더 낮을 수 있다. 둘 중 하나 이상은 소위 말하는 ‘독립 중소기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중소기업 애로를 ‘수탈하는 대기업과 약탈당하는 중소기업’ 프레임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물론 하도급법 위반 등 불공정거래는 근절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절반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 프레임에는 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일전에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소비재 기업의 30대 CEO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동창이 우리 회사에 다니는데 아무리 해도 지금 월급 갖고는 그 친구가 돈을 모을 수가 없어요. 중소기업들, 월급 더 올려줘야 해요” 실제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최근 출간된 <김우중과의 대화>에서 “중소기업 사장들이 나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 중소기업 근로자수는 1,259만명이다. 이들을 포함한 국민들은 ‘부자 중소기업(중견기업 포함) 오너와 빈자인 근로자’를 수없이 봐왔고, 또 보고 있다.

중소업계에 나눔의 철학을 실천하거나 회사의 이익을 임직원들과 공유하는 기업인이 적지 않다. 대기업 못지 않은 급여와 후생복리 혜택을 주고 있는 강소기업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저임금을 당연시, 또는 강요하면서 자신 만의 부를 쌓아 올리는 중소(중견)기업 오너 얘기가 여전히 많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려주면 배달사고(?) 없이 과연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소득이 올라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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