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방송사의 인기사극에 축지법을 쓰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축지법의 원리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떨어진 공간과 공간을 이어 붙여 물리적 거리감을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사극의 배경이 되는 300여년전 사람들의 눈에는 현대인들은 모두 축지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다. 고속 교통수단의 발달로 과거 한달 이상 소요되던 거리를 단 몇 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철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철도의 영향을 `공간과 시간의 소멸`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이런 생각의 근거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이루어낸 속도일 것이다. 영국에서 초기 열차의 속도는 그 당시 마차 속도의 약 3배인 시속 32~48㎞로써 공간과 시간을 3분의 1로 축소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속도로 야기된 공간적인 변화는 단순히 공간축소만이 아니라 `공간 확대`라는 또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말하면 운송시간 단축이 교통공간의 확장으로 나타나 보다 더 넓은 지역까지 이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내년 4월이면 우리나라에도 시속 300㎞의 고속철도가 운행된다. 이로 인해 경부축과 호남축 대부분의 도시들을 지금보다 약 절반의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바로 `현대판 축지법`인 것이다.
시인 하이네는 1843년 철도를 `화약과 인쇄술 이래로 인류에게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고속철도로 인한 `공간과 시간의 소멸` 및 `공간의 확대`도 이미 고속철도를 운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철도운송체계를 포함한 전반적인 교통이용패턴의 변화는 물론이며 국토이용 및 지역개발, 도시공간 활용, 주거 및 산업입지 패턴 등의 변화와 함께 동경-서울-북경을 잇는 동북아 고속철도망으로의 확대 가능성도 열어 놓게 될 것이다.
모든 변화는 양면성이 있어 늘상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부정적인 요소도 표출하게 마련이다.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로 꼽히는 고속철도사업의 완벽한 마무리를 위한 철도인들의 노력과 함께 고속철도로 인한 부정적인 측면은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변화는 극대화하기 위한 온 국민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김세호(철도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