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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잘나가던 중국이… 싸늘하게 식었다
[R의 공포를 넘어라] 글로벌 위기 현장을 가다 ③ 중국성장 급속 둔화… 양극화 심화… 수출서 내수 중심 전환 안간힘
베이징=이병관특파원 yhlee@sed.co.kr
건설·기계·조선 등 전방 수요 급감… 철강생산량 31년만에 마이너스로일부 도시 재정수입 40% 이상 뚝… 경기 하강에 국제 투기자금도 썰물신도시 건설·SOC 투자·감세 등 중국정부 대대적 내수 진작책 추진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에 있는 중장비 업체 A사 생산라인 현장. 굴삭기를 만드는 이 회사 공장에 근로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중국경기, 특히 중국 정부의 계속되는 부동산시장 규제로 건설경기가 위축되면서 중장비 주문이 급감하자 지난 7월부터 생산라인이 멈춰 섰기 때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올 들어 주문량이 전년동기 대비 40% 이상 감소했다"며 "일감이 없어 현장 근로자들이 7월부터 휴가에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견인해온 중국경제 곳곳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저장성에서 의류업을 하는 천모씨는 "경기둔화로 기업수익이 감소하면서 저장성 일부 도시들의 재정수입이 전년비 40% 이상 급감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중국경기의 바로미터인 철강 생산량은 올해 건설ㆍ기계ㆍ자동차ㆍ조선 등 전방산업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31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 않아도 공급과잉ㆍ재고과다에 시달리는 철강업계에는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급감까지 겹치면서 곳곳에서 도산의 검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이미 20여개 철강유통 업체는 채권은행 대출을 상환하지 못해 소송이 걸리는 등 업계 전반이 사상최악의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다.
철강업계는 이제 중국의 철강산업이 두자릿수 이상의 고속성장 시대에서 저성장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정부가 개혁ㆍ개방 이후 지난 30여년간 이어온 수출ㆍ투자 주도의 두자릿수 고속성장시대를 뒤로 하고 내수 주도의 자체기반 성장 모델 전환을 추진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거처럼 저임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밀어내기 수출, 정부ㆍ국영기업 투자 주도의 성장 방식으로는 자산배분 구조 왜곡 등 경제 불균형을 초래하고 계층 양극화에 따른 사회 불안정을 심화시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힘들다는 게 중국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내수 주도의 성장전환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중국 당국이 소비확대를 위해 근로자 임금인상 등을 유도하고 있지만 의료ㆍ양로ㆍ교육 등 기본 복지 시스템이 미비한 상태에서 미래가 불안한 국민들이 지갑을 열기란 쉽지 않다. 한국은행 베이징사무소의 김진용 대표는 "투자에서 소비 주도의 성장으로 전환하려면 의료ㆍ복지 개혁 등 기반 인프라가 갖춰줘야 하는데 이는 지난한 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세계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경기 하락,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껏 풀어놓은 재정부양책으로 거품이 낀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가격이 빠지면서 중국경기 경착륙 우려가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판샹둥 은하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부동산시장 규제로 부동산 가격이 평균 20%가량 빠졌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실질구매력 등을 감안할 때 추가로 20% 이상 가격이 하락해야 실수요가 살아나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메릴린치는 14일 외부경기 악화와 중국 자체의 잠재성장률 하락 등으로 중국경기 둔화가 예상된다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8%에서 7.7%로 또다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중국의 내수 주도 성장모델 전환은 기본적으로 철강ㆍ조선ㆍ시멘트 등 고질적 공급과잉 산업 부문의 투자를 줄이고 경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기 때문에 과도기적으로 성장률 감속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개혁ㆍ개방 이후 30여년 만의 이 같은 대전환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경기하강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진행돼 중국경기를 옥죄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의 고속성장과 위안화 가치 상승에 베팅하며 물밀듯 들어오던 국제 투기자금이 이제는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에만도 30억위안이 순유출됐다. 부동산 등 자산버블을 부추겼던 핫머니가 외부로 유출되면서 자산 버블이 꺼지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애쓰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 당국에는 부담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올 들어 경기하강이 가팔라지자 중국 정부는 각각 1,000만톤 규모인 바오산철강의 광둥성 프로젝트와 우한철강의 광시자치구 프로젝트를 승인하는 등 다시 국영기업을 통한 투자확대에 나서고 있다. 또 지방정부를 통해 신도시 건설 등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와 함께 감세 등 다양한 내수진작책을 동원하고 있다. 후베이성이 3년 내 고속도로ㆍ철도 등에 1조위안을 투자해 창장 경제허브를 구축한다고 발표하는 등 저장성 닝보, 후난성 창사 등 지방정부의 경기진작책들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내수 주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사회개혁, 경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하는 절대과제 속에서도 가파르게 하락하는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 요구에 직면한 중국 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