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힘찬 부활의 용틀임을 시작했다. 지난 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뼈아픈 구조조정을 겪었지만, 시련을 이겨낸 회사는 더 강해졌고, 침체된 직원들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쌍용건설의 시련이 시작된 것은 8년 전인 지난 98년 11월. 그룹이 쌍용자동차를 대우자동차에 매각하면서 떠안은 부채 1,600억원과 IMF 외환위기 당시 발생한 미수금 3,700억원으로 현금 유동성이 악화되면서 99년 3월 2일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 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2,300명에 달하던 직원 수는 800명으로 줄었고, 40명이던 임원 수는 13명이 됐다. 보유자산은 가차 없이 매각됐으며, 회사는 철저한 내핍 경영에 들어갔다. 엄청난 부채비율 때문에 수주도 힘들었다. 97년 2조2,039억원에 달하던 수주액은 98년 3분의 1에 가까운 8,138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함선욱 건축본부 영업총괄 상무는 “경쟁사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도 ‘쌍용은 빼고 가자’ 식으로 나와 설움을 많이 당했다”며 “회사가 안 좋다며 퇴짜를 놓을 때마다 반드시 정상화해서 돌아오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쌍용건설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2001년 5월 서울 종로 내수동에서 분양한 ‘경희궁의 아침’이었다. 철저한 상권분석과 마케팅을 바탕으로 대형 건설회사조차 포기한 사업을 보기 좋게 성공시켰다. 서울 4대문 안의 가장 중심지인 광화문에 1,300가구의 대규모 단지를 짓겠다는 발상도 참신했을 뿐 아니라 분양 당시에도 이틀 밤 이틀 낮을 꼬박 줄 서야 계약할 수 있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쌍용건설의 실력을 확인시켰다. 최세영 홍보팀장은 “천편일률적인 영문 브랜드와 차별화 한 한글 이름과 풍수지리 마케팅이 시장의 엄청난 호응을 얻어 한 달 만에 분양이 완료됐다”며 “미국 LA에서 열린 사업설명회에 회장님이 직접 참석, 교포를 대상으로 설명했던 것도 입소문 마케팅에 단단히 한 몫을 했다”고 말했다. ‘경희궁의 아침’에서 시작된 신화는 서울 강남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도곡 렉슬’로 이어졌다. 쌍용건설 컨소시엄이 지은 3,002가구 규모의 이 초대형 대건축 단지는 2003년 분양 당시 단일 아파트 최고 경쟁률이 368.5대 1이나 됐고, 43평형의 경우 경쟁률이 무려 4,795대 1의 신기록을 기록했다. 쌍용건설은 하지만 주택보다 고급 건축물과 토목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아파트 사업에서 번 돈으로 최저가 낙찰에 주력해 실적을 쌓는 일반 건설업체와 달리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턴키와 적격사업에 들어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쌍용건설 만의 특기를 살렸다.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말. 5년 연속 적자를 보이던 경상이익이 워크아웃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된다. 이듬해 4월 채권단은 경영평가 우수등급 판정을 내리고, 그 해 10월 18일 쌍용건설은 그렇게도 기다리던 워크아웃 졸업을 맞는다. 5년 7개월 만이었다. 워크아웃 졸업을 자축하는 자리에서 김석준 회장은 “그 누구보다 흔들리지 않고 맡은 일에 충실해준 직원들이 가장 고맙다”라며 가장 먼저 직원들의 마음고생을 다독였다. 쌍용건설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수합병(M&A) 작업이 시작된다. 하지만 ‘사냥꾼’을 기다리는 다른 매각대상 기업과는 사정이 다르다.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사주조합 지분(18.93%, 작년 말 기준) 때문이다. 우리사주조합은 2003년 3월 구조조정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유상증자가 무산되면서 700명의 직원이 퇴직금을 중간정산 해 320억원을 출자한 데서 시작됐다. 당시 쌍용건설의 주가는 2,000원. 하지만 증자주식 발행가격은 5,000원으로 너무 비쌌다. 하지만 직원들은 퇴직금을 털어 2,000원 짜리 주식을 5,000원에 사는 모험을 단행했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사주조합은 자산관리공사(38.75%)에 이어 2대 주주가 됐을 뿐 아니라 채권단 지분 24.72%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도 쥐고 있어 M&A에서 당당히 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해외 고급건축 '名家'
두바이 3大호텔중 2개 시공…싱가포르선 건설대상 11회 쌍용건설을 말할 때 해외 고급건축은 '화룡점정(畵龍點睛)'에 해당된다. 쌍용건설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중동, 미국,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건축 및 토목 실적을 쌓아왔다. 80년대 초반에는 회사 매출의 80%가 해외 매출일 정도로 해외에서 승승장구 했다. 특히 쌍용건설은 공정이 까다로워 건축 공사의 백미로 불리는 고급 호텔과 첨단 병원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1만 객실 호텔, 8,000병상의 병원공사 실적을 보유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현재 해외 고급건축의 경연장으로 불리는 아랍에미레이트(UAE) 두바이의 3대 호텔 가운데 2개 호텔은 쌍용건설이 시공한 것이며, 건설 감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는 건설대상(BCA Awards)을 11회나 수상해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외 고급건축 시공실적 1위 기업'임을 확인시켰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중동, 인도 등 일부 지역에서만 해외사업을 이어가던 쌍용건설은 워크아웃을 졸업한 후 건설명가의 부활을 선언하고 다시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출발점은 인도였다. 올 초 쌍용건설은 인도 고속도로청이 발주한 노스-사우스 코리더 고속도로 5개 공구 중 4개 공구, 총 179km를 1억 5,732만 달러에 단독 수주했다. 한 날 한시에 입찰한 프로젝트에 한 업체가 무더기 수주를 한 것은 현지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공사가 완공되면 쌍용건설은 인도에만 무려 269km에 이르는 도로를 깔게 된다. 서울-대전이 160km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거리다. 이어 쌍용건설은 지난 2월 싱가포르에서 일본의 시미즈와 가지마 등 세계 유수의 건설업체들을 물리치고 미화 8,134만 달러 규모의 '오션프론트(Ocean Front, 조감도 왼쪽)' 콘도미니엄(고급아파트) 공사를 디자인앤빌드(Design & Build, 설계ㆍ시공 일괄수행) 방식으로 수주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휴양지로 개발 중인 센토사 섬 해안 고급 주거단지단지에 들어서는 이 아파트는 지상 11∼15층, 5개동 264가구로 평당 공사비가 600만원이며 평당 분양가는 3,300만원이나 된다. 7월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초호화 복합건물인 '플라자 인도네시아 확장공사(Plaza Indonesia Extensionㆍ왼쪽)'를 수주했다. 특히 쌍용건설은 이 프로젝트 입찰 최종단계에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사비를 줄일 수 있는 대안을 제출해 일본 최대 건설사인 시미즈를 제치는 것은 물론 발주처의 신임도 얻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 최고 상류층 문화를 상징하는 탐린 스트리트에 오피스(41층), 아파트(47층), 쇼핑센터(6층)로 들어설 이 건물은 '케라톤(Keratonㆍ왕궁)'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일본 동경의 록본기 힐스, 홍콩의 퍼시픽 플레이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도네시아의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