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표방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가 공식 활동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지만 증권가의 평가는 우호적이지 못하다. 일부에서는 자산주의 가치를 일깨워줬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지배구조개선펀드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데 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그동안 장하성펀드가 투자 대상으로 삼은 기업의 면면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장하성펀드는 지난 8월23일 첫 투자 대상 기업으로 대한화섬을 지목했다. 그런데 대한화섬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70%를 넘고 있어 지배구조 개선 대상으로 삼기에는 부적절하다. 두번째 타깃으로 선정한 화성산업도 최대주주 측 지분이 31.09%에 달하고 있고 지배구조에 특별히 문제가 있는 기업은 아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기업지배구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재벌 오너들이 아주 적은 지분을 갖고도 황제경영을 하면서 변칙으로 재산을 증여하거나 계열사에 부당지원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화섬과 화성산업은 대주주 지분이 안정돼 있는데다 자본금도 각각 66억원과 622억원에 불과한 중소형주다. 대한민국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기에는 상징성이 약할 수밖에 없다.
장하성펀드는 왜 핵심 타깃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은 건드리지 못하고 외곽만 때리는 걸까. 장하성펀드의 자금 규모는 고작 2,000억원이다. 이 자금을 10개 정도에 분산투자한다고 하면 한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은 200억원선이다. 이 자금으로 지분 5% 정도를 매입할 수 있는 기업은 시가총액 160위권 밖의 작은 기업뿐이다. 펀드자금이 획기적으로 들어오지 않은 한 시가총액이 수십조원에 이르는 재벌기업을 건드리기는 불가능하다.
장하성펀드는 이제라도 지배구조개선펀드라는 거창한 포장은 뜯어내는 것이 좋다. 역외펀드의 성격상 외국인 주주의 수익을 올려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냥 저평가된 가치주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당당하게 말하라. 굳이 투자자들을 현혹하면서까지 화려한 겉포장을 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