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전문직 장년 폭주족


인간의 피에는 질주 본능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늘과 땅, 바다에서 사람들은 스피드에 열광한다. 조금이라도 빠른 탈 것을 제작하고 구경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속도경쟁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몸으로 체감하는 스피드의 백미는 모터사이클링이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속도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대중화한 오토바이는 곧 규제를 불렀다. 자칫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특성 탓이다. 규제는 반발을 야기해 1935년 시카고에서 최초의 폭주클럽(Outlaw Motorcycle Club)이 등장했다. 2차 대전 직후부터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 미국 폭주클럽의 전성기는 1960~1970년대.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감과 히피문화가 맞물려 미국은 물론 세계각국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일본에서는 1975년 '폭주족'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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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폭력성. 통제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현대판 카우보이로 불리던 미국 폭주클럽은 세를 불려가며 국제적 범죄조직으로 변해 나갔다. 1996년에는 대전차 미사일을 동원한 파벌 간 원정 싸움으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적도 있다. 일본에서는 600여대의 오토바이끼리 난투극을 벌이고 상대조직원을 가스버너로 태워 죽이는 잔혹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 폭주족의 존재가 알려진 시기는 23년 전인 1990년 이맘때. 대학생과 재수생 폭주족이 20대 회사원을 집단 성폭행한 게 한국 폭주족이 언론에 등장한 최초 사례다.

△의사와 건축설계사 등 30, 40대 전문직으로 구성된 폭주족 9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탈리아산 고가 오토바이인 두카티 동호인 모임인 이들은 서울에서 이천까지 3시간 동안 갈지(之)자 운행ㆍ전차선 잠식ㆍ신호 위반ㆍ진로방해 등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혐의를 부인하던 이들은 경찰이 영상증거를 내밀자 시인했다고 전해진다. 범법도 범법이지만 비겁하다. 지난해에는 40대 후반 교수와 목사가 폭주족으로 체포된 적도 있다. 폭주의 고령화ㆍ고학력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배운 어른이 부를 과시하려 철모르는 아이와 같은 만용을 부리다니…. 천박하다. 어디 폭주하는 게 한둘이랴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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