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목요일 아침에] 무리수가 필요하다

김인모 논설위원

57만명이 넘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의 학부모 가운데 표준점수의 환산방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표준점수를 왜 채택했느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총 시험과목이 51개나 되는 만큼 표준편차를 적용한 표준점수가 그나마 과목간 상대적 불평등을 보정한 점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표준점수는 원점수 만점이 100점일 때 평균점수가 50점이고 표준편차가 10라고 가정했을 경우에만 0~200점으로 환산될 뿐 실제로는 만점도 없고 0점도 없는 점수계산법이다. 따라서 문제는 표준점수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선택과목이 많고 과목에 따라 난이도 조정이 쉽지 않아 과목간 불평등을 완벽하게 보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영역별ㆍ과목별 표준점수 분포도가 좌우대칭인 산봉우리형이 돼야 정상이지만 과목에 따라 ‘쌍봉형’이나 ‘파도형’으로 나타난다면 표준점수로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형 전과목을 다 맞춘 두 학생이라도 선택과목에 따라 표준점수가 달라지는 만큼 같은 대학 같은 학과에서 당락을 달리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목 내의 상대적 불평등을 보정해준다는 백분위점수나 9등급 분류가 완벽한 것도 아니다. 원점수 만점자의 비율에 따라 표준점수는 같더라도 백분위점수는 다르게 되며 만점자가 많을수록 백분위 최고점수는 더욱 낮아지기 때문이다. 등급 역시 불평등이 심한 것은 마찬가지여서 만점자가 넘친 일부 과목의 경우 아예 2등급이 사라지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벌써부터 내년도 재수전략으로 쉬운 과목이냐 어려운 과목이냐를 선택하는 포트폴리오를 짜느라 고민하는 게 이해가 갈 정도다. 여기다 대학마다 표준점수나 백분위만 활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둘을 혼용하는 경우와 심지어는 응용해 활용하거나 가중치를 주는 경우까지 있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전국 대학의 응시전형 방식만 2,000가지가 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능에서의 다양한 선택과목 조합과 학생부 반영 비중의 차이, 그리고 수시입학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 대학진학 방식은 백인백색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올해 수능은 ‘예고된 혼란’에 난이도 조정 실패까지 겹쳐 교사와 학생 및 학부모들을 미로에 빠트리고만 셈이다. 그런데 교육당국은 오는 2008학년도부터 표준점수나 백분위보다 더 변별력이 없는 등급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물론 정부의 기본방향이야 대학의 서열화를 막는 데 있겠지만 실제로 수험생들은 수학이나 과학 같은 어려운 과목을 더욱더 피할 가능성이 높다. 고교의 하향평준화에 이어 대학의 하향평준화라는 우려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스 시대 때 피타고라스 학파 내에 대소란이 일어났다.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다른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해결할 수 없는 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따르면 정사각형의 대각선의 제곱은 한 변의 제곱의 두 배가 돼야 하지만 무리수 개념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대각선의 길이가 2m인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학파 내의 한 학자가 이 문제를 폭로했고 그는 밀교적 성격이 강한 학파 내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용감한 학자의 죽음이 요즈음 루트라고 부르는 무리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올해 수능 응시생과 학부모들의 심정은 그리스 시대에 무리수를 상상한 학자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교육당국은 학생선발권을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정수로 구할 수 없는 문제에는 무리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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