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철강산업 ‘재편의 불길’/한보·삼미·기아특수강 잇딴 좌초

◎열연강판 부족하고 냉연은 넘쳐나고 지구촌 수출시장개척도 계속 뒷걸음/“과잉 투자경쟁보다 내실화 승부걸자”/포철·동부·현대·연합 등 공동대처 시동철강산업의 재편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한보와 삼미특수강이 무너지면서 시작된 철강산업의 구조재편은 산업계 전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철강산업은 현재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가. 특집을 통해 이 문제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지난 9월10일 상오, 서울 인터콘티넨탈호텔에 포항제철을 비롯한 철강업계 경영진 12명이 모였다. 「중장기 열연강판 수급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다. 포철이 각 냉연강판 및 강관업체들에 공급하고 있는 열연강판의 양이 턱없이 모자라 이에대한 대책을 숙의하러 모인 것.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 주로 논의된 것은 열연강판의 공급부족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예상되는 냉연강판의 공급과잉 문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냉연강판 생산업체들이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간담회의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참석자들은 지금처럼 대형투자가 지속될 경우 과잉설비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데는 인식을 함께 했다. 그러나 투자조정에는 각사의 이익을 앞세워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일부 참석자들이 『앞으로 예상되는 과잉설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동 대처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선뜻 『우리가 먼저 증설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내놓지 못했다. 대부분 전문경영인인 이들은 공장건설의 백지화를 결정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영주가 야심을 가지고 추진하는 사업을 피고용인이 포기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우리의 경영풍토에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연합철강의 이철우사장이 『아산만지역에 추진중인 냉연강판 공장건설계획을 재검토해 보겠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올해초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철강업계는 「최악의 97년」을 견디고 있다. 삼미특수강이 무너진데 이어 기아특수강이 법정관리를 신청, 굵직한 업체들의 부도가 꼬리를 이었다. 문제는 이같은 대형 철강업체들의 부도에 원인을 제공한 과잉설비와 금융시장 불안 등의 요인이 앞으로도 기업들의 경영에 암초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따라 올해의 철강업체 연쇄부도는 앞으로 이어질 「철강산업 재편」의 전주곡일 뿐이란 전망마저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모한 투자경쟁보다는 내실화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철강산업이 대표적인 중후장대업종으로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까닥 잘못된 투자를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는 모래성을 쌓기 쉽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철강협회의 자료를 보면 냉연제품은 오는 2000년에는 전체 생산량의 절반인 7백만톤을 수출해야 적정 가동률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해외시장 여건상 이같은 대규모 수출은 불가능할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기업들이 냉연강판 생산설비를 대규모로 신증설 함에 따라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수요는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포철이 최근 연산 1백80만톤 규모의 광양 4냉연공장 가동에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내년말까지 동부제강(1백30만톤)·한보철강(1백50만톤)·현대강관(1백80만톤)·연합철강(1백30만톤) 등이 잇따라 대규모 냉연설비의 신증설에 나서고 있다. 이에따라 국내 냉연강판 생산능력은 현재의 8백40만톤에서 오는 2000년에는 1천5백만톤으로 두배이상 늘어나는 반면 내수는 7백36만톤에 불과, 7백만톤 이상을 수출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물건을 밀어낼 곳이 없다. 통상산업부는 해외무역관을 통해 동구권에 냉연강판을 수출할 수 있는지 여부를 최근 조사했는데 이들 국가도 남아도는 냉연제품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산업에 또하나의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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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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