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의 인화성은 폭발적이다. 돈 나가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나. 정국 주도권을 잃어가던 민주당은 세금폭탄론을 내세워 가까스로 살아났다. ‘세금폭탄’은 국어사전에도 영어사전에도 없다. 영어권에서는 사용 빈도도 한국에 비해 떨어진다. 대신 보다 험악한 용어가 있다. ‘세금 폭동(tax riot)!’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식민지에서도 세금을 거두려는 영국의 조세정책에 대한 반감과 조세 저항으로 태어났다. 독립전쟁 참전용사들이 징세에 거부하는 반란을 연달아 일으키지 않았다면 미국은 13개의 독립주로 이뤄진 약체 연방에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세계 정복에 나서기 전에 조세 폭동을 겪었다. 의회 민주주의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ㆍ1215년)도 국왕에 대한 귀족들의 세금 거부로부터 나왔다. 자본주의 국가의 시작이라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제국에 항거한 이유도 세금에 있다.
△세금에 대한 불만은 한국의 현대사까지 갈랐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였던 허화평 전 의원은 유신체제 몰락이 부가가치세로부터 비롯됐다는 견해를 수차례 밝혔었다. 2차 석유위기 직후 유가 급등과 중화학공업 중복 투자에 따른 불경기의 와중에 도입된 부가가치세에 대한 상인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잠재돼 있던 정치적 염증과 겹쳤기 때문이라는 것. 유신체제 붕괴로 직결된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에서 시위대의 공격을 가장 먼저 받아 불타버린 관공서는 세무서였다.
△민주당이 세법개정안을 세금폭탄으로 몰아붙이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월급쟁이에게 집중된 세액 부담을 지나치게 부풀렸다. 아전인수요 견강부회가 아닐 수 없다. 야당의 공세에 펄펄 뛰는 새누리당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2005년 종합부동산세 논란 당시 세금폭탄이라는 용어를 무리하게 일반화시킨 장본인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다. 종부세 납부와 관계없는 달동네 영세민까지 ‘노무현 정부의 세금폭탄’에 대해 분개할 정도로 당시에는 톡톡히 재미 봤지만 이제 입장이 바뀌었으니 인과응보인 셈이다. 자업자득인 측면도 없지 않다. 증세 없는 복지공약이 성역으로 굳어지며 재정과 조세 문제가 꼬여버렸으니까. /권홍우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