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1년6개월을 맞아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약속을 지켰다고 자랑했다. IMF 체제하에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해 1년6개월만에 IMF 위기를 벗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 경제성장률 등 각종 경제지표를 놓고 볼때 분명히 IMF위기를 탈출, IMF이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게 정부의 자평(自評)이었다.IMF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경제지표가 IMF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게 IMF 탈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IMF를 불러온 비효율적 경제구조, 부패관행 등을 온존시킨채 다시 흥청망청대는게 IMF 위기 극복이라고 말할리도 만무하다. 그나마 현재 상태는 일단 IMF 위기만 벗어났을 뿐이다. 어찌보면 예상치못한 IMF라는 터널에 들어서서 갑작스런 어둠에 당황하다가 겨우 시력이 어둠에 적응한 정도일 뿐이다. 아직 IMF 터널의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어떤게 IMF 탈출인가. 현재 상황을 보면 기업들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제품 품질을 높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탈바꿈해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쟁력이 높아져 국부(國富)를 키우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같다. 기업의 부채비율을 낮추고 비주력업종을 정리하며 재벌의 선단식 경영을 깨부수고 총수 1인에 의한 황제경영을 탈피하는 등 기업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진행해 기업경쟁력을 높여야만 IMF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IMF를 앞세운 미국식 사고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의 모델은 일본식 경영방식이었다. 그러나 10년넘게 일본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국이 장기호황을 누리자 미국식 경영방식, 시장주의가 지상명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식 경제체제로 탈바꿈해 시장주의가 지배하는 강한 경제구조를 만들어놓는게 과연 우리에게 바람직한 것인가 의문이다. 미국이 장기호황을 누리고 있다지만 그들의 분배구조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으며, 20대80의 사회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대로 나아가는게 옳은 일인지 걱정된다.
IMF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금융·기업 등의 부문별 구조조정은 나름대로 밑그림이 그려진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구조조정이 마무리된 이후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인본주의는 끼어들 틈새가 전혀 없는 시장주의 원칙아래 효율성만 추구하는 사회인지, 그래도 모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경쟁력을 서서히 키워나가는 구조가 될지 알 도리가 없다.
IMF 터널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터널의 끝을 어떤 모습으로 계획하면서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할 때다. 최근 정부가 시장주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제시한 「생산적 복지」라는 말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