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선진 기업 망신은….'
정부가 세계 주류업계 1위의 영국 간판기업 디아지오에 대해 칼을 갈고 있다. 선진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해 모범적으로 시장을 선도하지는 못할 망정 갖가지 위법ㆍ편법 행위로 뚝하면 말썽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지오가 우리나라에 설립한 법인의 배당소득까지 탈루하려 했다는 정황까지 포착되자 세무당국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특히 디아지오가 기존 관세의 누락 혐의를 놓고 법정소송으로 맞불을 놓은 상황에서 영국의 주한대사관 고위관계자가 국내 세무당국을 방문해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것으로 보인다. 일개 기업의 탈세 문제를 해당국 정부 외교관료가 이례적으로 직접 비호하고 나서면서 자칫 우리나라의 조세주권 침해 논란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세무당국 내부에서는 디아지오와의 일전에서 절대 패해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이 팽배하다. 이번에 탈세 혐의를 제대로 입증해내지 못하면 앞으로 비슷한 유형의 해외기업 탈세 문제가 터져도 계속 눈 뜨고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다. 디아지오 수입물품을 담당하던 관세청 직원이 지난 2004년 디아지오 측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8년 5월 고등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은 것도 세무당국이 자존심을 건 요인으로 꼽힌다. 상황에 따라서는 탈세에 대해 사법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서울세관은 2004~2010년 디아지오의 위스키 관세 탈세 혐의에 대해 단순히 추징금을 물리는 행정처분을 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2011년분 탈세 혐의도 잡고 있는 만큼 해당 사안에 대해서는 형사고발까지도 검토할 수 있다는 게 세관 안팎의 분석이다. 세무당국의 한 관계자는 "아직 행정처분을 내리지 않은 2011년분 위스키 관세 누락 혐의나 기존 배당소득 탈루 혐의에 대해서는 탈세의 고의성이 입증되면 사법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중 배당소득 세금탈루 의혹은 디아지오가 국내법인 디아지오코리아로부터 받은 경영지도수수료(management fee)가 정상적인 거래가격을 넘어서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무당국의 또 다른 관계자는 "세법상 '이전가격세제'를 적용할 경우 기업들의 일반적인 거래관행에 비춰볼 때 자회사가 해외의 모회사에 과도하게 많은 경영수수료를 줄 경우 실질적인 배당소득으로 간주해 과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때 해당 수수료가 정상 가격 수준을 넘어섰는지를 입증하려면 해당 거래와 성격 등이 유사한 제3의 기업들이 주고 받는 경영지도수수료 수준을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조세 전문가들은 전했다.
아울러 2011년도 위스키 수입관세 누락에 대한 고의적 탈세 입증 여부는 최근 터키의 사례가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터키 사례는 디아지오가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복적으로 탈세를 해왔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 세무당국은 현지에서 디아지오 측 위스키의 일반 출고가와 면세점 가격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탈세를 입증, 사법수순까지 밟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기업의 적극적인 조세회피행위는 일종의 택스플래닝(tax planningㆍ절세기법)으로 보아 용인하고 있지만 만약 그 과정에서 소득을 반복적으로 과도하게 누락했다면 고의성이 있다고 보아 탈세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무당국은 2004~2010년 위스키 관세 누락에 따라 부과한 4,000억원대의 추징금 취소 여부를 놓고 디아지오 측과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디아지오 측은 1차분 약 1,900억원은 이미 납부한 상태이지만 2차분에 대해선 소송을 걸어 오는 9월 말까지 납부 유예조치를 받은 상태다. 해당 유예조치는 부과금 취소 여부를 가리는 본안 소송의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법조계는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