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공직자의 부정·부패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규제 방안을 담은 김영란법이 제정되면 공직사회의 투명성과 청렴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정치권과 여론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김영란법에 대한 국회 논의가 거듭될수록 새로운 쟁점사항만 잇따라 부각됐다. 대상을 좁게 해도 공직자와 그 가족 1,500만여명이 김영란법의 테두리에 들어가게 되지만 부작용과 입법적 흠결에 대한 부분도 명확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다. 이에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에 발생할 수 있는 상황과 문제점을 국회 정무위원회 논의 내용(법안심사소위·공청회) 및 여야 의원들이 공개 석상에서 제기한 사례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뒤 분석해봤다.
#1.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정모씨는 최근 한 호텔에서 대학 동기 최모씨와 저녁 식사를 했다. 최씨는 정씨에게 '얼마 전에 회사에서 성과급을 받게 됐다'며 1인당 10만원 상당의 식사비를 결제했다. 정씨는 '그럼 다음에는 내가 한턱 내겠다'며 저녁 식사를 마무리했다.
정씨는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현재 공직자가 사교나 의례 목적의 음식·경조사비·선물 등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3만원 선으로 논의되고 있다.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서 정할 부분이다. 이에 따라 3만원을 초과해 10만원의 식사를 대접 받은 정씨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문제는 정씨가 직무와 관련 없는 친구로부터 저녁을 얻어먹은 것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안에 따르면 '공직자의 직무수행의 공정성과 사회적 신뢰를 해칠 우려가 없다고 인정할 경우, 또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것'은 금지 예외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쉽지 않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처벌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2. 박모씨는 현재 부산광역시의 한 구청에서 일한다. 그의 신분은 지방직 공무원이다. 함께 거주하는 처제 김모씨는 최근 형부의 소개로 알게 된 구청 직원으로부터 10만원 상당의 스카프를 선물 받았다. 김씨는 박씨 부부에게 스카프를 받은 사실을 자랑했다.
박씨는 50만원가량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공직자 또는 그 가족이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최대 5배 이하의 과태료를 물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김영란법 원안 및 정무위 여야 합의사항)
다만 처제가 형부와 함께 살지 않을 경우에는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배우자의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박모씨가 처제의 금품수수 사실을 즉각 기관장에게 알렸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족의 공동생계 및 금품수수 인지 여부에 대한 명확한 법적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 한국공연예술센터에 근무하는 성모씨는 9급 행정직원이다. 한국공연예술센터는 공직 유관단체에 해당한다. 공연장의 대관업무를 담당하는 성씨는 업무 특성상 공연단체 관계자들을 만날 일이 많다. 최근에는 한 공연단체 관계자로부터 110만원을 받았다. 그 관계자는 "별다른 뜻은 없고, 그냥 공연 발전을 위해서"라며 돈을 건넸다.
성씨는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김영란법의 입법예고안(원안)과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합의안에 따르면 공직자 또는 그 가족이 금품을 받을 경우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형사처벌과 과태료의 구분 기준은 100만원이다. 이 같은 규정에 따라 성씨가 직무와 무관하게 돈을 받았다고 주장해도 무조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스폰서 검사' 등의 사건이 발생해도 직무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한 탓에 기소된 공직자가 무죄를 선고 받았던 점을 감안, 직무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해도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을 받은 공직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100만원이라는 기준이 어떤 논리로 제시된 것인지가 문제다. 정승면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지난 10일 정무위 공청회에서 "현재와 같은 기준은 어떤 사람의 따귀를 두 대 때리면 형사처벌을 받고 한 대 때리면 과태료를 받는 것과 같다"며 "과연 그게 납득 가능한 부분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