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CP 발행해도 수요없어 금리만 '고공비행'

'시장 꽁꽁' 금리 7.12% 2000년이후 최고 수준<br>건설·캐피털은 발행조차 못해 "환란때보다 더 심각" <br>삼성계열사도 채권시장 등장…시중 자금난 반영


회사채는 물론 기업어음(CP) 시장마저 꽁꽁 얼어붙었다. 장ㆍ단기를 가릴 것 없이 돈을 빌리려는 기업은 줄을 서 있지만 빌려주겠다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추세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지금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하다”는 말도 나온다. ◇CP 금리 고공행진=회사채뿐 아니라 CP 금리도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세 차례에 걸쳐 1.25%포인트나 낮췄지만 기업의 단기자금조달 수단인 CP(91일물 기준) 금리는 200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0일 CP 금리는 7.12%를 나타냈다. CP 금리는 올해 초만 해도 5.50%대를 유지했지만 7월 6%대로 상승한 데 이어 10월부터는 줄곧 7%대에서 소폭의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11월에는 7.26%로 2000년 8월(7.4%대)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그나마 이런 금리도 신용도가 가장 높은 기업(A1 등급)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건설회사나 캐피털업체 등은 두자릿수 금리를 줘도 CP를 발행하기 어렵다. 최근의 CP 금리 상승세는 건설사 등이 지급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등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K건설회사가 지난달 말 발행한 ABCP의 경우 A2 등급인데도 금리가 17%(가중평균금리)에 달했다. 이 ABCP의 만기는 3개월로 시공능력 최상위 수준의 건설사가 채무인수 약정을 제공했다. 가중평균금리이기 때문에 실제 발행금리는 20%를 넘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ABCP는 분양 받은 계약자의 계약금ㆍ잔금 등을 기초로 발행되는 자산유동화증권으로 만기는 주로 3개월 이내다. 보통 부동산개발기간이 2~3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0여차례 이상 계속 발행돼야 하지만 최근에는 발행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발행하려는 곳은 많은데 매수세는 별로 없고 최근에는 주수요처 가운데 하나인 은행 신탁계정도 매수를 축소했다”며 “자산운용사도 공기업 CP 정도만 사는 상황이라 A2 등급 이하 CP는 발행 자체가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발행하기만 해도 다행=최근 시장에서는 회사채나 CP를 발행하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말이 일반화됐다. 건설회사 등에 대한 부실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채권을 사주겠다고 나서는 매수자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단기금융시장의 수급여건이 악화됐고 리스크 요인이 부각되면서 회사채나 ABCPㆍCP 등의 신규 발행이 여의치 않다”며 “건설 부문의 부실이 금융 부문으로 전이돼 금융시장 전체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만기가 열흘이나 한달 정도에 불과한 ABCP가 등장했다. 일반적인 ABCP 만기는 3개월이나 투자자들 사이에서 ‘이 기간도 너무 길다’는 불안감이 확대되면서 만기를 이처럼 축소한 ABCP가 등장하게 됐다. 시중은행 자금부의 한 관계자는 “건설회사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CP를 사주겠다고 하는데 금리와 만기가 중요하겠느냐”며 “그나마 발행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경사”라고 말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그나마 A3 등급도 CP를 발행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발행 자체가 어렵다”며 “신속하고 과감한 유동성 공급이 없으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회사채도 사정은 마찬가지=회사채 시장도 CP만큼이나 어렵다. 투자적격 등급인 BBB-급 회사채(3년 만기) 금리는 9월 말 10.81%에서 10월 말 11.32%, 11월 말 12.53%로 계속 올랐다. 우량채인 AA-급 회사채 금리도 같은 기간 7.76%에서 8.13%, 8.91%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모두 높은 금리를 주고서라도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삼성그룹 비금융계열사 채권도 잇따라 발행될 정도다. 제일모직이 지난달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호텔신라가 이달 9일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호텔신라의 회사채 발행 금리는 연 9.13%로 제일모직(8.11%)을 제치고 1999년 이후 발행된 삼성그룹 계열사 채권 가운데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채권은 외환위기 직후 대우채 사태, SK글로벌 사태, 신용카드 사태 등 뚜렷한 위기상황에서 한두 차례 등장했을 정도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이전에는 2004년 8월 발행된 삼성전기 회사채가 마지막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호텔신라나 제일모직 등 삼성그룹 계열사 채권이 시장에 등장한 것 자체가 최근의 자금난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내년에는 시중자금 사정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대기업들도 높은 금리를 주더라도 자금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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