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름이야기’의 촬영 현장을 찾은 날. 기온은 섭씨 30도를 한참이나 넘겼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무더위. 금세 땀이 비오듯 흘러 옷을 적신다. 일사병을 염려한 영화사 측이 챙이 커다란 밀짚모자를 준비해 주었다. 모자로 뜨거운 김이 훅훅 떨어지는 햇볕을 가리고 촬영장을 찾았다. 경북 예천군의 선동이라는 작은 마을의 수박밭 한가운데. 그늘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뜨거움의 한복판에서 주연배우 이병헌과 수애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 기자를 포함해 스텝들까지 기진 맥진인데 이들은 태연하게 연기를 한다. 하지만 감독의 컷사인이 떨어지지마자 이들도 예외 없이 가뿐 숨을 내쉰다. 덥지 않느냐는 질문에 수애는 “그래도 오늘은 좀 나은 편이네요. 어제나 그제는 정말 말도 못했어요.”라고 대답한다. 이런 여름의 한복판에서 촬영되고 있는 여름이야기는 농촌봉사활동 나온 한 대학생과 마을 도서관사서의 짧은 사랑을 그린 멜로물. 한달간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 뒤 평생을 서로 그리워하는 연인의 이야기다. 어떻게 해서 ‘여름이야기’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이병헌은 “그저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좋아서”라고 밝힌다.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내가 느꼈던 좋은 느낌을 관객들도 느낄 것이라 믿는다”고 말한다. 수애 또한 6~70년대의 정서를 한껏 느낄 수 있기에 ‘여름 이야기’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사랑의 배경은 새마을운동 직전인 1969년. 실제로 영화는 그 배경에서부터 6~70년대 농촌의 느낌을 담뿍 담았다. 3,000평의 땅에 제작진이 직접 논과 옥수수밭, 콩밭을 가꿨다. 멀쩡하게 포장된 도로에도 덤프트럭으로 흙을 부어 길을 좁히고 비포장 도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태어난 산동마을은 여지없이 추억 속의 작은 산골마을. 제작진이 직접 지붕을 얹은 초가집과 작은 마을 분교, 우체국 등이 정취를 더한다. 태어나기도 전인 30년 전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어려움은 없냐는 물음에 두 사람은 모두 “사랑이란 감정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고 생각한다”고 대답을 한다. 특별히 그 시대의 시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연기 한다기 보다는 현대의 사랑을 연기하듯 자연스럽게 접근한단다. 다만 이병헌은 “좀 더 순수하고 설레임이 있는 그런 감성이 60년대의 사랑인 듯 싶다”며 ‘마음’을 강조했다. 그는 “짧고 강렬한 한달 남짓한 사랑을 했고, 그 이후는 평생에 걸쳐 이별하는 과정이다.”라고 영화 속 사랑을 설명하면서 겉으로는 옛사랑을 잊은 듯 하지만 마음 속 잔상을 간직하고 있는 그 시절의 순정남을 그리고 있다고 밝혔다. “전작인 ‘품행제로’때 못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멋있고 예쁜 배우랑 작품을 해보는 게 소원이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긴 조근식 감독의 말처럼 촬영장에서 만난 이병헌, 수애는 무더위 속에서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 외에도 여태껏 봐온 이병헌, 수애의 모습보다 좀더 소탈하고 인간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감독의 장담. 뜨거운 한여름을 거치며 한창 촬영중인 ‘여름이야기’는 올 가을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