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27일(현지시간)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정크 수준인 'CC'에서 '선별적 디폴트(SDㆍSelective Default)'로 강등했다. 선별적 디폴트는 모든 채무를 갚을 수 없는 디폴트의 바로 전 단계로 일부 채무를 정해진 날짜에 정상적으로 상환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번 조치는 채권단의 3분의2가 국채교환에 찬성하면 반대하는 채권단도 강제로 국채를 교환해야 하는 '집단행동조항(CACs)'이 도입된 데 따른 것이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지난 21일 그리스에 1,3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민간채권단의 국채손실률을 53.5%로 높이는 방안과 CACs에도 합의했다. S&P는 "CACs로 국채교환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도 손해를 많이 보게 됐다"고 등급강등의 배경을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S&P가 국채교환이 진행되면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것이라고 예고해왔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에방겔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이날 "등급강등이 그리스의 은행 부문에 유동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며 "국채교환이 마무리되고 나면 다시 등급이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 디폴트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상황이다. 그리스가 민간채권단과의 국채교환 협상에서 난항을 겪거나 당초 약속한 채무감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또 다른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S&P는 "그리스가 145억유로 규모의 국채를 상환해야 하는 다음달 20일까지 민간채권단과의 협상에 실패할 경우 추가 신용등급 강등이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날 의회가 그리스 2차 구제금융 지원안을 통과시킨 자리에서 그리스에 대해 "밑 빠진 독""절망적인 상황"이라며 "솔직히 그리스 2차 구제금융 지원이 성공할지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피어 슈타인브뤼크 전 독일 재무장관도 "유로존이 머지않아 그리스에 대한 3차 구제금융을 논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S&P는 이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했다. S&P는 "EFSF가 채권 보증국들의 약화된 신뢰도를 상쇄할 정도의 충분한 신용강화 조치를 내놓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S&P는 지난달 17일 EFSF의 신용등급을 기존 최고등급이던 AAA에서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하며 전망을 '유동적(developing)'으로 유지했다. 이는 전주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신용등급이 강등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