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알맹이 없는 주총 언제까지


주주총회 시즌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 주총에서 주주들의 목소리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클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는 기업들에 쌓아둔 사내 유보금을 배당·임금·투자 등으로 풀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국민연금 등 연기금도 배당을 터무니없이 적게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의결권행사를 통해 압박을 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주주들이 주총장을 찾지 않더라도 간편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전자투표제가 도입되면서 소액주주들이 주요 안건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었다.

주총이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볼 때 올해도 역시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우선 외양만 봐도 그렇다. 상법상 정해놓은 기업의 주요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리는 주식회사의 최고 의결기구라는 사전적 의미가 무색하게 대부분 주총이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의사봉 몇 번 두드리고 30분 만에 뚝딱 해치웠다. 단골 메뉴인 거수기 사외이사 문제 역시 국민연금이 일부 대기업의 사외이사에 대한 반대의견을 나타내 주목을 받았지만 거의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다. 400여개 기업이 전자투표를 도입했음에도 실제 이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2%에도 미치지 못해 당초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실효성을 의심 받는 상황이다.

국내선 '최고 의결기구' 역할 못해


지난 2012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을 경험한 적이 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미 중서부 도시 오마하에서 진행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은 '자본주의의 우드스탁(세계적인 음악축제)'이었다. 3만여명의 주주가 주총이 열리는 컨벤션센터를 꽉 메운 광경이며 오전9시부터 오후3시 넘어까지 5시간여 동안 워런 버핏이 그의 평생 파트너인 찰리 멍거와 함께 쉴 새 없이 주주들의 다양한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경이롭기조차 했다. 특히 사전에 선정한 질문단 3명에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 포함된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밀려드는 외지인들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총 때면 톡톡히 특수를 누렸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 같은 형태의 주총을 이미 40여년 전부터 해왔다.

관련기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미국의 일반적인 기업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주총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외부투자자들이 주총을 통해 회사경영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기업들도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 미국 등 선진국 기관들은 투자기업 주총 안건의 15% 정도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는 통계도 있다. 많은 미국 기업들은 주총을 투자자·소비자들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한다. 최근 세계적 미디어·테마파크 기업인 월트디즈니가 주총에서 '겨울왕국' 속편 제작계획을 발표해 주주뿐 아니라 미디어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우리 금융당국은 상반기 중 연기금을 수탁·운용하는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스튜어드십(stewardship)'을 선보일 예정이다. 배당이나 지배구조 등에 관해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라는 주문이다. 소액주주들의 권리행사도 활발해질 것이다. 기업에 소액주주나 외부투자자들은 회사의 주인이자, 동반자이다. 그럼에도 당장 시끄럽지 않게 하려고 일시에 몰아쳐 주총을 열고 그것마저도 형식적으로 치르는 지금의 행태가 지속된다면 기업에 대한 오해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투자자-기업 소통의 장으로 활용을

만성적인 저성장을 탈피하는 데도,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도, 국민소득 증대에도 모두 기업이 앞장서라고 하는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 자신들이 깔아놓는 마당에서조차 움츠리면서 이보다 훨씬 더 강도가 강하고 범위가 넓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는가.

협상론의 대가인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그의 저서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협상에 성공하려면 상대방의 입장과 원하는 것을 알고 접근해 서로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윈윈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기업들도 외부의 요구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설득할 것은 설득할 수 있도록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