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기업의 경영리스크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삼성과 LGㆍ현대차ㆍSK그룹 등 주요 대기업들이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19일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환율은 급등하는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이에 따라 자금시장 경색과 소비위축에 대한 우려감이 확산되고, 대규모 투자 결정에 대한 부담감 등이 엄습하면서 대기업들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LGㆍ현대차ㆍSK그룹 등은 김정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긴급 대책회의를 여는 동시에 정보수집과 경제동향 점검을 특별 지시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소식과 금융시장, 해외 기업들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며 "사실상 모든 기업들이 김정일 사후 정세가 국내외 경제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긴장감을 전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주식시장 폭락 등 금융 시장의 혼란이 가중될 경우 내년 자금조달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자금시장 동향을 집중 점검하는 등 재무관련 비상계획 마련에 착수했다. 주식시장 폭락세가 지속될 경우 증자 등을 통한 자금 조달도 어려워져 기업의 자금원이 말라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기업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내년 초에 회사채 등을 발행해 투자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컨트리 리스크가 높아지고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을 한 동안 외면할 경우 외부 자금 조달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계 1번지'격인 삼성그룹은 내년초 발표 예정인 내년 투자 계획을 조율하는 상황에서 벌어진 특급 변수로 인해 투자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장단들은 각 계열사별로의 경영 변수를 살펴본 후 오는 21일 열릴 예정인 '수요 사장단 회의'에서 김정일 사망과 한반도의 지정학 리스크,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심도있게 따져볼 예정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각 계열사별로 현재의 상황을 면밀이 분석하면서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변수를 꼼꼼이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는 판매 차질에 대비해 시장 상황 점검과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불황으로 내수시장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김정일 사망이라는 악재가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가뜩이나 내수 판매가 어려워 지고 있는 상황인데 불안감이 확산돼 판매가 더욱 나빠질 수 있다"며 "시장 상황과 판매 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있다"고 전했다. SK그룹은 지주회사인 SK를 중심으로 긴급 점검을 하고 관련 부서에서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지는 소식을 종합, 향후 전망 등을 분석하는 작업을 개시했다. 이에 맞춰 SK경영경제연구소 등 관련 부서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칠 환율과 유가, 금리 등 거시 경제 동향에 대해 긴급 점검에 돌입했다. 특히 SK는 그룹의 사업 구조가 국가 위급 상황시 가장 중요한 인프라인 통신과 에너지 등 국가 기간산업인 점을 감안, 향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당 관계사와 부서 등에 철저한 관리에 들어갔다. 항공업계도 초비상상태에 이미 돌입했다. 그동안 북한은 국내 항공업계에 간헐적인 돌발행동을 보여왔던 만큼 이번 사태에 맞춰 항공기에 연료 추가 탑재를 지시해 북한 영공을 피해 승객 안전을 챙기고 나선 것이다. 북한 영공을 지날 때 일본쪽으로 우회하라는 조치다. 아시아나항공의 한 관계자는 "김정일 사망 소식 이후 이륙 항공기에게 최장 1시간 30분 정도 더 운행할 수 있는 추가 연료를 탑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또 운항중인 모든 항공기는 위성 통화를 통해 관제 상황에 적극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정유업계 역시 마찬가지.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있는 국내 정유사들의 경우 김정일 사망이 향후 수입원가에 미칠 영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환율 상승으로 인해 원유 수입가격 상승이 우려되고 있다. 또 투기적 성향이 강한 국제 원유시장의 특성상 국제 정세불안이 가중될 경우 유가 급등 가능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정유업계는 북한의 상황변화에 따라 비축유 공급물량 확대 가능성도 따져보고 있다. 현재 국내 비축유 물량은 정부와 민간 비축물량을 모두 합해 약 200일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