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아베 총리의 사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책임’이라는 말을 언급하며 사죄의 뜻을 밝혔다. 아베 총리가 책임이라는 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그는 “과거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동원의 증거가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만 해왔다. 이런 그가 사죄의 뜻을 밝혔다는 것에 대해서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사죄는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는 의구심이 든다. 아베 총리가 누구인가. 그는 일본 전후 체제의 양대 근간인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을 개정하고 과거사를 미화하는 등 ‘전후 체제 청산’ 작업의 선봉에 서 있는 대표적인 극우 강경파 인사다. 그가 2차대전 A급 전범으로 투옥됐던 기시 노부스케(安信介) 전 총리의 외손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엇보다 사과의 시기와 방법이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아베 총리는 오는 26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그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책임을 경감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 하원은 현재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심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사과와 책임을 거론한 것은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자신의 책임 회피성 발언에 대한 미국 내 반발을 희석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 내 비판 여론을 무마하지 않을 경우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미국 측의 지원을 얻으려는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중국 언론이 아닌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사과의 뜻을 밝혔다는 것도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일본 언론조차도 아베 총리의 발언이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교도(共同)통신은 “(아베 총리가) 인식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 발언을 명확히 철회하지 않는 한 이번 책임감 표명도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베 총리는 과거 의원 시절에도 종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자주 밝혔었다. 이 같은 정치적 소신과 역사적 인식은 총리가 된 뒤에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일개 의원이 아닌 일본 최고의 지도자다. 일국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발언과 행동을 책임지려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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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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