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南北장관급회담에 거는 기대

지난 15일 개성에서 열린 실무대표 회의에서 이달 26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평양에서 제20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가질 것을 합의했다. 동 회의에서는 덕담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3시간의 점심시간을 포함, 4시간 만에 회담 일정과 주요 의제에 남북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회담의 필요성에 대해 참여정부는 남북관계를 후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하며, 북한은 6ㆍ15 공동선언의 정신 아래 주변정세와 상관없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주변 정세와 상관없이’란 말이 찜찜하기는 하지만 남북 정부가 내건 대의명분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련의 상황전개가 그다지 개운하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장관급 회담의 합의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의혹이다. 동 실무대표 회의는 13일 6자회담 합의가 발표되기 하루 전날 한국정부가 제의해 다음날 북한이 이에 응한 형태이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었을까. 남북 대화의 일방적 중단과 연기를 밥 먹듯이 하던 북한이 준비가 됐다는 듯이 한국의 제의에 응한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혹시 사전 밀약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달 16일 김정일 생일에 맞추어 남북 대화에 합의했다면 이는 한국 정부의 매우 심각한 기만행위이자 월권행위이다. 둘째,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할 내용이다. 정부간 회담이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려면 무언가 절실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북한이 지난해 7월 미사일 발사 이후 쌀 차관 50만톤과 비료 10만톤이 유보된 관계로 춘궁기를 벗어날 쌀과 파종기에 사용할 비료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한국의 이해관계인데 지난 19차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 혹은 합의는 됐으나 실천되지 않은 사안을 감안할 때 이번 회담에서는 수해복구 지원, 남북 장성급 회담 재개, 경의선과 동해선 열차 시험운행, 추가 경협 등이 의제로 오를 전망이다. 경제적 지원을 제외하면 모두 북한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척이 되지 못한 사안들이다.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좀더 신중을 기한 후 논의하면 안될 시급한 이유가 과연 한국 정부에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혹시 시중에서 이야기되듯이 현 정권에서의 정상회담이 한국 정부의 이면 목표라면, 그리고 이를 대가로 막대한 경제적 지원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후일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관계가 만에 하나라도 다가 올 대선 승리를 염두에 둔 정치적 술수의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더욱더 안된다.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는 6자회담에서 처리하고, 남북관계는 남북 양자간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국제정치의 비정함을 모르는 이야기이거나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동북아 역학관계상 남북 관계가 한미ㆍ북미ㆍ북중ㆍ한중 관계 등과 분리해 추진할 수 없음은 북한이 대미 직접 대화에 그렇게도 목을 매달았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윌트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재무장관 시절 영국의 재정을 재건한 훌륭한 정치가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 전야 독일에 행한 일련의 유화정책이 나치 독일의 대외 무력팽창을 막지 못해 후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체임벌린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릇 모든 정책은 상대방을 헤아려 결정되고 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선의는 국제정치의 덕목이 아니다.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행에 있어 비밀주의나 당파주의는 배격돼야 한다. 개성 실무대표 회의에서는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포함, 지난 일은 전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으로 있을 평양에서의 장관급 회담에서는 우리가 주도권을 잡고 어떤 형태로든 한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에 대해서는 제거되는 방향으로 그 가닥을 잡아가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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