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美 "보이지않는 부상 원인 밝혀라" 연구 박차

직접 타격 없어도 폭발 충격파로 병사들 뇌손상<br>"이라크·아프간 파병 미군 19%가 뇌손상" 보고서<br>"충격파가 '피의 쓰나미' 유발해 뉴런 파괴" 추측<br>美육군 충격흡수력 극대화 차세대 철모 개발 나서<br> 미식축구 헬멧 전투용으로 개량 연말께 공급 예정

이라크에서 많은 미군 병사들이 최신 방탄복과 방탄 헬멧 덕분에 폭발물 공격을 받고도 목숨을 구했지만 뇌에 가해지는 손상은 방탄복으로도 막을 수 없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당하는 뇌손상은 각종 파편이나 둔기 등에 맞아서 생기기도 하지만 폭발물이 터질 때 방출되는 충격파나 전자기파가 원인일 수도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병사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경우가 많다. 한 연구에 따르면 파병된 미군의 무려 20%가 영구적 뇌손상의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외관상의 부상이 전혀 없음은 물론 두뇌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은 병사들에게서도 기억상실 등 뇌손상 징후가 보인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 원인 모를 뇌손상의 주범으로 폭발물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충격파와 전자기 펄스를 꼽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뇌손상을 유발하는 것일까. 이를 규명하는 것이 21세기 군 당국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 원인 불명의 뇌손상 뇌진탕은 머리가 어딘가에 강하게 부딪치거나 어떤 물체가 머리를 강타했을 때 일어난다. 아무리 강한 충격이라도 두뇌가 직접적ㆍ물리적 타격을 받지 않으면 뇌진탕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머리에 직접적인 타격이 없었는데도 뇌진탕과 유사한 치명적 뇌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에 파병됐던 미군 병사들에게서 이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심각한 뇌손상이 나타나 미군당국을 긴장 속에 빠뜨리고 있다. 지난 2005년 의무병으로 이라크에 파병됐던 프레드릭 허시도 그 중 한 사람. 그는 1년간 무려 6차례나 폭발물 공격을 당했지만 한차례 경미한 뇌진탕 진단을 받았을 뿐 별다른 외상이나 신체적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아 동료들로부터 무적의 사나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허시는 지금 그것이 오진이었음을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뇌진탕 증세는 늦어도 수개월 내에 사라지는 게 상례지만 제대 후 2년이 지난 지금도 극심한 두통과 메스꺼움ㆍ청력감퇴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친구 이름조차 기억 나지 않는 중증 기억상실증까지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허시처럼 귀환한 뒤 뇌손상이 심화돼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미군 병사들이 최소 수천 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 또한 얼마 전 '보이지 않는 부상'이라는 보고서에서 "이라크 및 아프간 파병 미군 164만명 중 19.5%인 32만명이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급조폭발물(IED) 등에 피폭된 후 크고 작은 뇌손상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혈관 속의 쓰나미 기존 상식을 깨는 이들의 존재는 미군에 크나큰 부담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걸프전 증후군과 증상이 다르다는 점만 확인됐을 뿐 정확한 뇌손상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탓이다. 막대한 전력손실을 감수하고 폭발물 공격을 당한 모든 병사를 의가사 제대시킬 수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치료는 고사하고 증상조차 진단할 수 없는 실정이라는 것. 과연 이 같은 물리적 충격 없는 뇌손상은 어디서 초래됐을까. 학계에서 가장 많은 동조를 얻은 이론은 바로 폭발물이 터질 때 방출되는 충격파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신경과학자 이볼자 체르나크 박사가 주장한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충격파가 몸통을 압박해 혈관 속에 '피의 쓰나미'를 일으킨다는 설명이다. 폭발물은 대개 폭발 직후 고온의 압축가스로 이뤄진 시속 수천㎞의 강력한 파동을 발산한다. 그리고 충격파는 이 파동으로 폭발 지역이 순간적인 진공상태가 됐다가 복귀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만일 이 공간에 사람이 있으면 급격한 기압변화 때문에 인체 장기(臟器)가 일순 확장됐다가 축소되며 망가져버린다. 체르나크 박사의 이론은 이 피해에 더해 몸통에 부딪친 충격파가 혈관에 엄청난 에너지를 전달, 혈액을 따라 충격 에너지가 뇌에 도달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뉴런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피가 뇌로 급격히 몰려 조직에 해를 가하는 것도 뇌손상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 폭발 충격파와 뇌손상 체르나크 박사가 처음 뇌손상과 폭발물 충격파와의 연관성을 인지한 것은 지난 1991년. 당시 세르비아에 있는 베오그라드의 한 군병원에서 연구자로 일했던 그는 유고내전을 겪으며 많은 피폭 병사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뇌손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폭발로 부상을 당했지만 눈에 띄는 뇌손상이 없는 병사 1,300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중 다수가 현기증, 두통, 어지럼증, 기억 및 집중력 상실 등 신경정신병적 증세를 보였다. 특히 뇌파검사에서 전체 대상자의 36%가 비정상 소견을 보였는데 1년 후 실시된 재검에서도 신경이상자 비율이 30%에 달해 증세에 차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머리부상 없는 뇌손상의 원인으로 폭발 충격파에 주목한 그는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이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고 쥐 실험을 통해 충격파만으로 뇌손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쥐의 머리를 강철 헬멧으로 완벽히 방호해 고정했음에도 폭발에 노출시키자 신경회로 파괴, 뇌세포 부종, 알츠하이머 환자 특유의 끈적한 오물 등 전형적인 뇌손상 증상이 유발된 것. 이 연구를 기반으로 현재 그는 인공장기가 부착된 인체모형에 1,216㎞의 압축공기를 쏘아 보내는 18m 길이의 충격 튜브를 활용, 충격파의 뇌손상 메커니즘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체르나크 박사는 "아직은 가설이지만 폭발 충격파는 뇌에 강하고 일시적인 피해가 아닌 작지만 장기적인 피해를 일으켜 MRI 등 기존 방법으로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며 "이 피해가 누적됨으로써 천천히 뇌세포가 파괴되며 정보의 흐름이 차단되는 화학적ㆍ분자적 도미노 현상이 뇌손상의 실체"라고 설명했다. ▲ 치료에 대한 희망 물론 모든 연구자가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미 육군 소속 신경학자 제프리 링 대령은 충격파보다 오히려 전자기파(EMP)가 주범일 개연성이 더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현재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900만달러짜리 '폭발물 신경손상방지 프로젝트(PREVENT)'에서 폭발이 뇌에 미치는 화학적ㆍ구조적 영향을 연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에서 쓰인 철제 헬멧은 EMP를 반사하는 반면 현재의 케블라 헬멧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155㎜ 포탄이 터질 때 나오는 EMP는 무전기 회로를 합선시킬 정도로 강하다"며 "이 EMP로 뇌 속의 전기신호 전달 시스템이 합선돼 기능저하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신경의학계에서는 이처럼 연구 방향은 달라도 폭발물에 의한 뇌손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미 육군은 리델스포츠ㆍ제니트 등 미식축구용 헬멧 제조업체들을 동원해 충격흡수력을 극대화한 차세대 전투 헬멧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중 헬멧 내부에 18개의 공기 디스크 충격흡수 장치를 채용한 제니트의 X1헬멧은 올해 가을 전투용 디자인으로 변경돼 연말께 이라크 주둔 미군에 공급될 예정이다. 체르나크 박사는 "피폭자들이 겪고 있는 원인불명의 뇌손상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폭발에 노출된다고 무조건 뇌손상을 입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막연한 공포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며 "정부와 학계에서 이 증상의 존재를 인정한 만큼 효과적인 진단과 처방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