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금리로의 복귀와 부분적인 부실채권 정리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가 다시 침체 국면의 조짐을 보이면서 엔저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통화의 가치절하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미국에 의해 감기가 걸렸던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 때문에 독감을 앓게 될 공산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도네시아.타이완.말레이시아.한국.중국등은 전체 수출에서 일본시장의 비중이 30%이상이며 타이.싱가포르.필리핀.홍콩 등은 20-25%에 달하고 있다.
◇ 엔저 갈수록 심화될 듯 = 지난해 11월 엔화는 달러당 108엔 선을 유지했지만 최근에는 123엔대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이 엔저 용인을 넘어서 엔화 약세를 논의하고 있다는 설이 나돌자 3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는 한때 단기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125엔에 근접했다.
HSBC의 이코노미스트인 제프리 바커는 "엔화 약세가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엔화가 아시아 각국의 절하된 통화가치를 따라잡기 위해 하락하는 것"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원화는 지난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보다 23% 정도 평가절하된 상태며 말레이시아의 링기트화와 필리핀의 페소화 역시 각각 30%, 36%정도 가치가 떨어졌다는것.
바커의 이 같은 주장을 전제로 하면 엔화의 평가절하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코노미스트들은 엔화가 연말에는 달러당 140엔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엔화가치가 어느 수준까지 떨어질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당장 아시아 각국은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압력에 직면하게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 일본상품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일본 제품과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고정환율제를 고수하고 있는 중국이 엔저에 자극받아 위안화의 평가절하에 나설 경우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가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 아시아 국가중 한국 피해 가장 커 = 일본의 경제침체는 이미 아시아 각국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ING베어링의 이코노미스트인 팀 고든은 "일본에 대한 수출량이 10% 줄어들 경우 아시아 전체 GDP 성장률은 0.8%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엔저가 지속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밝혔다. 한국 수출품의 45%가 일본과 겹치는 데다 엔화에 대한 환율변동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바클레이 캐피털은 엔화 약세에 따라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450원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일본발(發) 경제위기의 피크는 엔저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게 이코노미스트들의 분석이다. 통화의 평가절하는 수출에 도움이 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의 가중은 물론 원재료 수입가의 상승으로인해 가공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 하락은 자본조달 비용 및 달러표시 부채의 상환부담 증가로 연결되고 이는 또다시 금융부문의 부실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다.
/정구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