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에 대해 사실상 시장의 범주 또는 시장에서의 경합대상을 국내에만 국한시켜 해석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무역장벽이 완전 개방된 상황에서 규제의 대상을 ‘국내기업’에 집중시켜왔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제한하는 ‘자기 식구 손발 묶어놓기’라는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끊임없이 거론됐다. 재계는 마침 정치권에서 공정위의 기능 재편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시점에 이번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가 나왔다는 점에 상당히 기대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관변연구기관에서마저 공정위의 반독점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점은 그만큼 공정위의 규제범위나 대상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이번 기회에 공정거래법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기본 취지에 대해 백지에서 재검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대에 맞는 공정위를 만들자=재계는 공정위의 규제를 한마디로 ‘글로벌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우물 안 규제’라고 비판해왔다. 현명관 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기업들은 경제전쟁에서 글로벌 자이언트들과 싸우고 있다”며 “경제전쟁에서 ‘전사(戰士)’는 기업인이고 유일한 무기는 기업의 투자인데 기업들이 규제에 묶이고 경영권 방어에 급급한 상황에서 제대로 투자를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계는 따라서 공정위의 규제도 글로벌 경쟁에 걸맞은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KDI의 보고서에서 지적하듯 경제정책은 기업의 생산성ㆍ효율성 증진 등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규제정책도 현재의 시장구조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경상 대한상의 기업정책팀장은 “공정위의 가장 큰 역할인 독과점 규제도 시대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며 “단순히 시장점유율만으로 독과점 규제를 하기보다는 기업의 독점이 시장을 왜곡시키거나 혼란스럽게 했느냐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가 문제점을 지적한 삼익악기의 경우도 대표적인 사례다. 공정위가 독점이라며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를 무효화시킨 것은 글로벌 경쟁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마치 ‘군기확립’식의 규제 적용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박정아씨는 논문에서 “기업이 시장경쟁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면 이 기업은 매우 효율적인 기업”이라며 “이를 규제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의 발전적인 기술개발을 저해하고 인센티브를 감소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본연의 기능으로 돌아가라=재계는 공정위가 미국ㆍ일본의 경쟁정책 당국과 달리 경쟁촉진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집중하지 않고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에 치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대기업 정책에 집중하면서 공정위가 기업을 혼내는 곳으로 역할이 변질된 것은 순수한 경제정책기관의 틀을 벗어났다는 지적이다. 전경련은 지난달 16일 공정위 기능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공정위는 시장규율 효과를 왜곡하고 기업성장을 가로막는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을 폐지하고 순수한 경쟁정책 기구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력집중 억제정책의 구체적인 수단이 되고 있는 ▦지분제한 ▦출자제한 ▦의결권제한 ▦부채비율과 채무보증 관련 규제는 대부분 소유지배구조 문제나 재무건전성과 관련된 사항이며 공정위는 이를 보다 전문적으로 관장하는 다른 부처로 업무를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두산의 경우 우여곡절 끝에 대우종합기계를 인수했지만 공정위의 유권해석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한다. 두산측은 ‘동종업종 적용제외 조항’으로 출자총액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시민단체 등에서는 명백한 출자총액제한제 위반이라며 공세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의 대우종합기계 인수의 마침표도 결국 공정위가 손을 들어줘야 한다. 만약 공정위가 출자총액제한 위반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두산은 과징금 처분을 피할 수 없고 시정조치를 통해 출자총액제한을 넘는 지분에 대한 ‘매각명령’까지 받게 된다. ◇공정위는 불확실성의 온상=재계는 공정위의 규제의 칼이 불확실성의 온상이라고 지적한다. 한치라도 방심하면 공정위의 규정을 어기게 되는 불안감을 끌어안고 글로벌 자이언트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의 경우 삼성에버랜드가 자칫 공정거래법상 금융지주회사로 간주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금융자회사 지분가치가 총자산의 50%를 넘게 되면 금융지주회사로 간주돼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총자산을 늘리거나 금융자회사 지분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폭탄을 매달고 글로벌 경제전쟁에 뛰어들어 맘놓고 싸울 수가 있겠냐”며 “기업이 기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폭탄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